PC함


일요일엔 오랜만에(라고는 하지만 사실 한 달치만 빠졌을 뿐이다.) 정의당 여성주의자 모임 세미나에 나갔다. 언제나와 같이 유익한 사람들과 알찬 시간을 보냈다. 저녁을 먹으면서도 나눈 이야기였지만 각자 다른 여러 일에 치이며 살던 와중 간만에 찾아온 지적 활동의 날이었다. 귀담아 들을 이야기는 많았다. 하지만 그에 대해 내가 왈가왈부할 이야기는 없다.

뭐 예전이라고 얼마나 대단히 열정적이었겠냐마는, 최근 페미니즘을 주제로 하는 이야기를 말로든 글로든 잘 표현하지 않고 있다. 자격 담론에(예: 내가 무엇이라고 감히 함부로 입과 손가락을 놀리는가?) 스스로 빠져 있는 것이 표현의 빈도와 정도가 줄어든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내뱉는 것이 없다보니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 늘어나게 되었는데 또 그렇게 다양한 층위의 주장을 접하다보면 각각 나름의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럴수록 나의 표현은 양성 피드백을 받아 더욱 단단하게 제한된다. 지금은 어쩌는 것이 더 올바른 것인지 잘 모르겠어서 그저 현상 유지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내 주변의 상황을 꽤나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다. 비록 내가 글을 쓰거나 말을 하지 않을지라도 나의 가치관과 태도를 인지하는 집단에서는 그에 반하는 표현을 알아서 자제하고 눈치를 본다. 나는 이를, 조금만 진지하게 불편함을 느끼며 생각해보면 무엇이 타인을 불편하게 만들 이야기인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는 방증으로 본다. 인류애를 잃을 때도 있지만 이렇게 희망을 볼 때도 있어야 하지 않겠나.

PC는 기본적으로 불편한 개념이라고 본다. 하지만 PC를 지킬 때 당사자가 느끼는 불편함은 PC를 지키지 않을 때 대상자가 받는 불편함에 비해선 미미할 것이다. 업계 사람들이 그렇게 물고 빠는 피터 티엘이 이야기한 것처럼 PC는 다양한 논의가 오가는 것을 저해하는 “가장 거대한 정치적 문제”인 것이 아니라 그 다양한 논의를 공정하고 균형감 있게 진행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토대라고 생각한다.

오랜만에 이런 시덥잖은 생각들을 하며 술을 먹은 일요일 저녁, 어느 커뮤니티에서는 유명인사인 고양이 선생님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비록 사진 속의 고양이 선생님은 약간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고 계시지만서도 고양이 선생님들처럼 세상을 편안하게 만드는 존재들은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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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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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초

약간 결이 다른 이야기론, 나는 웬만해서는 TV 가 보이는 자리를 서로 피하려고 하고, 정 피할 수 없을 때는 내가 TV 를 등지는 자리를 선호한다. TV 를 생활 공간, 업무 공간에 두고 있지 않은 나는 아무래도 TV 가 보이면 시선을 빼앗기기 마련인데, 그것을 맘에 들어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기 때문이다.

등산

일요일에는 관악산을 다녀왔다. 2016 년, 다니던 회사의 또래 친구들과 다녀온 뒤 처음으로 가는 관악산행이었다. 날씨가 정말 더웠고 사당역에서 올라가는 길이 생각보다 험했음에도 별탈 없이 무사 귀환했다. 약 5 시간 정도 이어진 등산 및 하산 중 느꼈던 것들을 간단히 정리해본다.

향초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는 향이 없는 사람으로 곧잘 인식된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자연스러운 체취든, 별도로 얹은 향이든 내 몸에는 냄새라는 것이 잘 붙어있질 않는다. 향수를 뿌리고 바로 외출해서 만난 사람이 향수를 전혀 느끼지 못할 때도 있었다. 나는 곧바로 그 사람들의 후각을 탓했지만 비슷한 일화가 여러 번 있었던 것으로 보아 어느 정도 일관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향수를 너무 진하게 뿌린 것이 아니냐고 묻는 사람들도 종종 있긴 했다. 나는 그 사람들의 후각도 의심하고 있다.)

Le Creuset skillet

그간 사용하던 테팔 팬이 있었다. 이제는 다소 낡기도 했고 무엇보다 이사온 집의 하이라이트(나는 여태까지 이걸 인덕션이라고 불러왔는데 얼마 전에 하이라이트라고 부르는 게 맞다는 걸 알게 되었다.)와는 사이즈가 잘 맞질 않았다. 2 구 하이라이트의 더 큰 구가 너무 벽에 붙어 있어서 기존의 팬을 사용하면 온도를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없는 구조였다. 그래서 그냥 하나 샀다. 요새 보니까 어딘가에서 엄청난 물량이 병행수입을 하는지 이곳저곳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팔고 있는 르쿠르제의 23cm 스킬렛이다. 아직 사용해보진 않았지만 물건을 딱 봤을 때의 소감은 1. 진짜 무겁다. 이걸 주로 사용하는 사람은 관절 관리를 열심히 하지 않을 경우 곧 손목이 고장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2. 진짜 무거우니까 웬만하면 작은 사이즈를 살 것. 3. 다시 한 번 강조하는데 무겁다.

소주잔

무슨 쓸데없는 말을 이렇게 장황하게 늘어놨냐면 지난 주에 자정이 지난 1시 반쯤 퇴근한 적이 있는데 그 전에 집에 놀러왔던 인턴 한 분이 그 심야의 엘리베이터에서 선물이라며 소주잔 세트를 꺼냈고 지난 일요일 혼자서 삼겹살을 사다가 구워 먹으며 그 소주잔에 혼자 소주를 따라먹으니 이렇게나 좋을 수가 없다는 느낌과 함께 아마 지금 사당역 인근에서 내 기준에 제일 좋은 술집은 내 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정갈한 낡음은 없지만 화장실이 청결하고 적당히 어둡게 조명을 켤 수 있으며 음악은 최고이고(물론 내가 선곡을 할 때의 이야기다.) 향초도 있고 술은 여러분이 맛있는 거 가져오면 되고 안주는 물만 있어도 되며 나는 훌륭한 사람이고 여러분도 훌륭한 사람이니까 이보다 더 환상적인 조합이 어디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