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군 훈련


우리나라 육군은 총 8 년 간의 예비군 기간을 가진다. 나오는 훈련을 빠지지 않고 잘 받을 경우 6 년까지만 실제 훈련을 받고 7, 8 년차는 전화 보고로 대체된다고 들었다. 나는 2012 년 용산 땅에서 전역을 하고 2013 년부터 예비군 훈련을 받기 시작했다. 즉 올해로 훈련다운 훈련은 끝이라는 말인데, 아래는 그간 받은 훈련에 대한 짧은 기억들이다.

2013 년: 2013 년 전반기를 학생 신분으로 있었는지 몰라도 나의 예비군 생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1 일 8 시간짜리 학생 예비군 훈련을 받았다. 원래는 대전에서 받는 것이었으나 원인불명의 허리 통증으로 훈련을 미뤘고(훈련을 미루는 것 역시 처음이자 마지막의 일이다.) 11 월인가가 되어서야 본가인 서대문구 주소로 훈련장을 배정 받았다. 구파발 어드메에 있는 곳이었는데 그 날 8 시간의 경험을 통해 점심을 먹지 않으면 매우 배가 고프다, 말동무가 없는 예비군 훈련은 정말 지옥이다라는 사실을 깨우쳤다.

2014 년: 이유는 모르겠는데 강북권에 주소를 가진 카투사를 전부 몰아다가 훈련을 받게 했다. 의정부 언저리였다. 당시엔 신용산에서 생활하던 때라 왔다갔다 하기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아무래도 카투사들이 많이 있다보니 같이 군 생활을 보낸 사람을 여럿 마주쳤고 그럭저럭 심심하지 않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무척 더웠던 기억이 난다.

2015 년: 강남구에 주소를 가지고 있던 때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강동송파예비군훈련장으로 동미참 훈련을 배정 받았는데 거처에서 다니기가 가장 가깝고 편리했던 곳이다. 메르스에 특히 민감한 지역이기도 했고 시기도 시기였던 만큼 매일마다 2 시만 조금 넘으면 퇴소를 했던 것 같다. 당연히 집에 가자마자 씻고 옷을 갈아입고 놀러 나갔다. 직장 생활을 하며 받는 예비군 훈련이 개꿀이라는 것을 깨달았던 때다.

2016 년: 동작구 사람으로서 첫 번째 예비군 훈련이었다. 훈련장이 안양에 있다는 낭보를 접하고 인터넷을 검색해보던 차, 왕복 차비 몇 천 원의 사설버스가 운행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3 일 내내 그 버스를 타고 편히 잘 다녔다. 가뜩이나 쥐꼬리만큼 주는 예비군 교통비를 매일 사용하게 되어 언짢았는데, 그나마 사설버스를 타고 다니는 것이 편한 것이란 걸 깨달은 건 다음 해의 일이었다.

2017 년: 작년부터는 3 일이 아닌 하루만 가도 되는 해였다. 3 일 간의 꿀이 없어진다는 사실이 슬퍼 작정하고 전날 친구들과 술을 들이붓고 아침에 일어나 지갑이 없어졌다는 사실과 숙취를 안고 4 호선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왜 버스를 안 탔는지는 모르겠다. 자괴감과 허무함 탓일까. 여튼 4 호선을 타고 금정역에서 1 호선으로 갈아타서 안양역에 내린 뒤 1 번 마을버스를 타고 예비군 훈련장으로 향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아찔했던 순간은 버스가 언덕길을 오르지 못하고 퍼져버렸던 때인데 다음 버스를 몰고 오던 기사가 부랴부랴 도움을 줘서 겨우 고개를 넘을 수 있었다. 훈련장 버스정류소에 내렸던 것이 딱 오전 9 시 정각. 비가 추적추적 내려서였는지 약간 유도리 있게 입소 시간을 조정해줬다. 하지만 그 날이 지나도록 내 지갑이 없어졌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았고 그 뒤로 난 지갑처럼 생긴 지갑을 사용하지 않게 된다.

2018 년: 훈련장으로 가는 훈련은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작년과 같은 루트를 택했다가 왜 내가 이 망할 경로를 택했는지 스스로를 탓했다. 그래도 작년처럼 버스가 퍼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8 시 50 분쯤 도착했다. 훌륭한 분대원들을 만나 조기 퇴소를 찍고 나오는데, 올해부터 바뀐 정책 때문에 교통비를 현금으로 받지 못했다. 작년부터 지갑처럼 생긴 지갑을 사용하지 않는 나는 현금을 거의 절대 들고다니지 않기 때문에 사설버스를 타지 못하는 불운을 겪고 다시 마을버스, 1 호선, 4 호선을 갈아타 사당에 왔다. 그 날 나와 같이 훈련을 갔던 친구의 이야기에 따르면, 사설버스 기사님들이 무려 토스로 탑승비를 받는 기염을 토했다고 하는데, 나는 나보다 40 분이나 일찍 도착해놓고 조기 퇴소를 하지 못해 나보다 40 분은 늦게 퇴소한 친구가 거짓말을 치는 것이라고 정신승리를 했다. 어차피 마지막인데 알 게 뭐람? 집에 와서는 여느 때와 같이 군복을 세탁기에 돌리고 씻고 바로 나가려고 했으나 몇 년 늙어버린 나의 육신은 나를 샤워기 앞이 아닌 침대 위로 이끌었다. 조금 누워 있다가 군복을 잘 널어놓고 씻고 친구 P 의 청첩장을 받으러 강남으로 떠났다.

후기: 사실 군대라는 주제어를 받았을 때 떠오르는 이야기는 정말 많고도 많다. 하지만 그게 다 무슨 의미인가 싶어 따로 기록으로 남겨두진 않는다. 언젠가 정 할 일이 없다면 조금씩 기억을 더듬어도 보겠지만 혼자 찌그리다가 말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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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초

약간 결이 다른 이야기론, 나는 웬만해서는 TV 가 보이는 자리를 서로 피하려고 하고, 정 피할 수 없을 때는 내가 TV 를 등지는 자리를 선호한다. TV 를 생활 공간, 업무 공간에 두고 있지 않은 나는 아무래도 TV 가 보이면 시선을 빼앗기기 마련인데, 그것을 맘에 들어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기 때문이다.

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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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초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는 향이 없는 사람으로 곧잘 인식된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자연스러운 체취든, 별도로 얹은 향이든 내 몸에는 냄새라는 것이 잘 붙어있질 않는다. 향수를 뿌리고 바로 외출해서 만난 사람이 향수를 전혀 느끼지 못할 때도 있었다. 나는 곧바로 그 사람들의 후각을 탓했지만 비슷한 일화가 여러 번 있었던 것으로 보아 어느 정도 일관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향수를 너무 진하게 뿌린 것이 아니냐고 묻는 사람들도 종종 있긴 했다. 나는 그 사람들의 후각도 의심하고 있다.)

Le Creuset skill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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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는 기본적으로 불편한 개념이라고 본다. 하지만 PC를 지킬 때 당사자가 느끼는 불편함은 PC를 지키지 않을 때 대상자가 받는 불편함에 비해선 미미할 것이다. 업계 사람들이 그렇게 물고 빠는 피터 티엘이 이야기한 것처럼 PC는 다양한 논의가 오가는 것을 저해하는 "가장 거대한 정치적 문제"인 것이 아니라 그 다양한 논의를 공정하고 균형감 있게 진행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토대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