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집


올해 6 월 끝자락은 내가 사당에 거주한 지 2 년이 되는 시기이자, 방 계약이 끝나감에 따라 불가피하게 이사를 해야 하는 시기이다. 이사를 갈 동네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 것은 지난 2 월부터였다. 당시에는 몇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첫 번째 선택지는 판교로, 7 월에 판교로 이사가는 회사를 다니기에 최적화된 곳이다. 두 번째 선택지는 판교로 출퇴근이 편한 서초구, 강남구의 남쪽 동네로, 회사까지 다소 시간을 걸리더라도 서울라이트로서의 생활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의지가 반영된 곳이다. 세 번째 선택지는 한남동 근처였는데, 이것은 그야말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여가 시간의 유흥에 몰빵을 한 옵션이었다. 내가 속으로 가장 원했던 곳은 어디였을까? 당연히 한남동이었다.

하지만 여기에 상술하기 어려운 문제, 그래도 되는 이슈, 그러지 않아도 모두가 알고 있을 사실 등을 이유로 나의 이사 갈 동네는 지금의 사당 1 동과, 동작대로 건너의 방배동으로 한정되고 말았다. 2 년 전이긴 하지만 처음 사당동으로 이사 올 때의 경험을 살렸을 때, 내 31 세의 2/4 분기부터 살고자 하는 방이 이 근방에 많지 않다는 위기감이 현타처럼 찾아왔다. 지금부터 방을 찾아야 한다. 그렇게 찾아온 당위성을 가지고 직방과 다방을 둘러봤다. 이사 갈 집의 조건으로 고른 것은 몇 가지가 없다. 지금 집보다 클 것, 그리고 화장실에 샤워 부스가 있을 것. 전자의 경우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문제지만 후자는 1 인 가구 형태의 주거를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사뭇 생경하게 다가올 수 있다.

(다인 가구의 생활 양식을 직접 구상해보지 않은 사람으로서 그 경우는 잘 모르겠고 ㅎㅎ) 1 인 가구의 생활 공간에 샤워 부스의 존재 여부가 갖는 의미는 상당하다(고 본다). 첫째로 화장실 환경을 쾌적하게 유지하기 용이하고 청소가 간편하다. 둘째로 해당 건물이 신축이거나 실내 리모델링을 한 지 얼마 안 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오래 된 건물에 샤워부스가 달려 있는 경우를 난 본 적이 없다. 약간 불분명한 셋째 의미는, 공간을 설계한 사람이 그나마 사람이 살기 좋으려면 어떤 것들이 있으면 좋을지 조금이라도 고민했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적잖은 자본을 들여 큰 기업에서 지은 오피스텔 건물과(세대수가 수백개 이상은 되는 규모) 그보다 작은 적당한 규모의 오피스텔이나 다세대 주택형 원룸의 디자인 퀄리티는, 경험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정말 차원이 다르다. 후자의 경우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식으로 방을 만들어놨는지 알 수 없는 때가 많다. 도저히 효율적으로 냉방을 할 수 없는 위치에 달려 있는 에어컨디셔너, 변기에 앉아 있는 사람의 자세를 도저히 배려하지 않는 휴지걸이의 위치, 장 또는 방문의 동선에 걸리는 콘센트 등이 그 예다.

저 두 가지 조건을 만족하는 집을 본 것은 지지난 주 수요일의 일, 아무래도 사당역 인근에 비슷한 수준으로라도 흉내를 낸 집이 없을 것이라는 강한 확신이 들어 지난 주 월요일에 미리 입주 계약을 마쳤다. 어제는 이사갈 집에 잠깐 들러 이곳저곳 벽과 창문의 너비를 쟀다. 여러모로 만족스러운 집이지만 실측을 하면서 알게 된 점은, 에어컨디셔너가 굉장히 애매한 곳에 달려 있다는 것, 화장실의 휴지걸이가 변기 뒤에 달려 있다는 것, 침실(?)의 콘센트가 옷장 문에 걸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사당에 이보다 나은(나의 기준에서) 집은 없다. 고 정신승리했다. 최소한 이제 내 거처를 “방”이라고 부르지 않고 “집”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승리자가 아닌가?

이사를 마치고 난 뒤엔 종종 손님들을 초대해볼 생각이다. 이전 방에서는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 사당 인생 2 막, 이한결의 사당 그라인드 하우스 시즌 2 가 벌써 기다려지는 이유다.

Related Posts

초상화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지만 또 받고 나면 괜히 버리기는 찝찝한 선물을 궁리하고 계신 여러분들께 강력하게 초상화 선물을 추천드립니다.

향초

약간 결이 다른 이야기론, 나는 웬만해서는 TV 가 보이는 자리를 서로 피하려고 하고, 정 피할 수 없을 때는 내가 TV 를 등지는 자리를 선호한다. TV 를 생활 공간, 업무 공간에 두고 있지 않은 나는 아무래도 TV 가 보이면 시선을 빼앗기기 마련인데, 그것을 맘에 들어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기 때문이다.

등산

일요일에는 관악산을 다녀왔다. 2016 년, 다니던 회사의 또래 친구들과 다녀온 뒤 처음으로 가는 관악산행이었다. 날씨가 정말 더웠고 사당역에서 올라가는 길이 생각보다 험했음에도 별탈 없이 무사 귀환했다. 약 5 시간 정도 이어진 등산 및 하산 중 느꼈던 것들을 간단히 정리해본다.

향초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는 향이 없는 사람으로 곧잘 인식된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자연스러운 체취든, 별도로 얹은 향이든 내 몸에는 냄새라는 것이 잘 붙어있질 않는다. 향수를 뿌리고 바로 외출해서 만난 사람이 향수를 전혀 느끼지 못할 때도 있었다. 나는 곧바로 그 사람들의 후각을 탓했지만 비슷한 일화가 여러 번 있었던 것으로 보아 어느 정도 일관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향수를 너무 진하게 뿌린 것이 아니냐고 묻는 사람들도 종종 있긴 했다. 나는 그 사람들의 후각도 의심하고 있다.)

Le Creuset skillet

그간 사용하던 테팔 팬이 있었다. 이제는 다소 낡기도 했고 무엇보다 이사온 집의 하이라이트(나는 여태까지 이걸 인덕션이라고 불러왔는데 얼마 전에 하이라이트라고 부르는 게 맞다는 걸 알게 되었다.)와는 사이즈가 잘 맞질 않았다. 2 구 하이라이트의 더 큰 구가 너무 벽에 붙어 있어서 기존의 팬을 사용하면 온도를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없는 구조였다. 그래서 그냥 하나 샀다. 요새 보니까 어딘가에서 엄청난 물량이 병행수입을 하는지 이곳저곳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팔고 있는 르쿠르제의 23cm 스킬렛이다. 아직 사용해보진 않았지만 물건을 딱 봤을 때의 소감은 1. 진짜 무겁다. 이걸 주로 사용하는 사람은 관절 관리를 열심히 하지 않을 경우 곧 손목이 고장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2. 진짜 무거우니까 웬만하면 작은 사이즈를 살 것. 3. 다시 한 번 강조하는데 무겁다.

PC함

PC는 기본적으로 불편한 개념이라고 본다. 하지만 PC를 지킬 때 당사자가 느끼는 불편함은 PC를 지키지 않을 때 대상자가 받는 불편함에 비해선 미미할 것이다. 업계 사람들이 그렇게 물고 빠는 피터 티엘이 이야기한 것처럼 PC는 다양한 논의가 오가는 것을 저해하는 "가장 거대한 정치적 문제"인 것이 아니라 그 다양한 논의를 공정하고 균형감 있게 진행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토대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