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의 소비: 첼시 FC 홈경기 티켓


중곡동의 한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고딩 예비 한남충들의 최고 인기 스포츠는 뭐니뭐니해도 유럽 축구였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의 분위기를 그대로 타고 고등학교에 진학한 세대, 텍스트의 CM이 2D 그래픽의 FM으로 진화한 그야말로 개벽의 시대를 연 세대, 플스방이 전성기를 맞이하여 위닝이 스타와 쌍벽을 이루는 친목게임 양강구도의 희생양이 된 세대 등은 내 또래 문화를 설명하기에 손색이 없는 말들이다. (물론 이는 사실이 아니며 어디 가서 이야기하면 덕후 소리 듣는다.)

지금도 그렇지만 내가 어릴 적부터 극도로 싫어하는 국빠들이 그 당시 EPL에서 가장 많이 응원하던 팀은 “제발 한국인이면 맨유좀응원합시다”의 바로 그 맨유였다. 당시에는 아프리카TV에서 불법으로 틀어주는 EPL 경기를 많이 보던 때였는데 정말이지 맨유 경기 보면서 “국빠” 같은 단어 하나라도 내뱉으면 바로 강퇴를 당하는 파시즘의 시대였다. 언제 어디서나 반골의 싹을 자처하는 나로서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억압과 폭정의 그 시절 한 줄기 빛과 같았던 팀이 있었으니… 바로 첼시 FC다. 스페셜 원 무리뉴의 지도하에 EPL 한 시즌 신기록인 29승을 거두며 04-05, 05-06 연속 우승을 거두었고 국빠들의 콧대를 꺾고 단연 EPL의 최강팀으로 군림하게 된다. 첼시의 팬이 되지 않고는 도무지 배길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사실 첼시의 경기를 처음 보게 되는 것은 아니다. 2005년 정규 시즌 시작에 앞서 삼성과 스폰서 계약을 맺은 기념으로 첼시 1.8군쯤 되는 팀이 수원 삼성과 친선 경기를 한 적이 있다. 마음 맞는 고등학교 친구들 4-5명과 함께 수원구장을 방문, 상당한 명당을 꿰차고 앉아 첼시 선수들의 이름을 연호하며 사대주의의 극단을 뽐냈더랬다. 기억하기로는 1군이라고 할 만한 선수로는 조 콜과 데미안 더프가 있었다.

탬파베이 레이스의 팬이 되고 실제 탬파베이 레이스의 경기를 보러 가기까지 거의 10년의 시간이 걸렸던 것에 비하면 이번에 첼시 FC의 경기를 직관하는 것은 여러모로 의미가 더 크다. 일단 직관까지 걸린 시간도 시간이거니와(2005년의 1.8군 경기는 잠시 잊자.) 홈 구장에서 경기를 보게 되었고(2012년 당시 레이스의 경기는 필라델피아 어웨이였다.) 경기의 상대는 강력한 우승 후보 중 하나인 맨체스터 시티다. 이 이 주의 소비를 올해의 소비로 만들 마지막 조건은 첼시의 승리인데 지난 주말 아스날 전에서 보인 경기력이라면 좀 긴가민가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오랜 첼시 팬에게는 이만큼 값진 소비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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