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의 소비: 저스트 페미니스트


나는 정의당 여성주의자 모임의 - 찻잔 속의 폭풍일 뿐이겠지만 그 찻잔에 발을 담그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뜨거운 감자라고 할 수 있는 - 회원이다. 눈에 띄는 활동을 안 하는 편이라 모임 내의 사람들도 거의 모르겠지만 모임이 만들어지고 얼마 안 된 아주 초기 단계에 들어가 간간히 있는 술자리에 얼굴을 비추는 정도로 활동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초여름에 있었던 티셔츠 모델을 하게 된 것은 아주 이례적인 일이다.

이 시대의 한국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정의당이라는 정당의 당원 노릇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비율면에서 보든 사람들의 인식을 고려하든 일반적인 일은 아니다. 내 소셜 채널의 확증편향적인 면을 무시하고 일반적이라 할 수 있는 다른 여러 온, 오프라인의 여론을 봤을 때 페미니즘이라는 이데올로기를 개인 가치관의 전면에 내세우는 것 역시 일반적인 일은 아니다. 하물며 소위 진보정당이라고 분류할 수 있는 정당에서 페미니즘을 외치는 것은 아주 소수 중에 소수라고 본다. 개인적인 의견이다.

소수 중에 소수라는 이야기를 한 의도가 내가 어떠어떠한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은 아니다. 지난 1년간, 아마도 동시대 한국에서 전반적으로 가장 프로그레시브한 이 모임의 활동에 건성으로나마 참여하면서 나는 실로 많은 것을 배웠다. (단 배움이라는 것엔 반면교사라는 채널이 있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별 생각없이 살아온 지난 날을 수십 번이나 되돌아보게 되었고 스스로의 부족과 무지를 반성했으며 앞으로의 길에 그런 부끄러움을 흘리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중이다.

지난 주말엔 정의당 여성주의자 1주년 모임이 있었다. 유령회원에 가까운 활동력이지만 언급한 대로 많은 것을 얻어가는 사람으로서 일종의 부채의식을 안고 모임에 나갔다. 오후 4시에 시작한(이것은 내가 2부부터 나갔기 때문이고 1부는 2시에 시작했다.) 모임은 동지 달 기나 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 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룬 님 오신 남 밤이어든 굽이굽이 펴지는 것처럼 무한히 길어져 결국 다음 날 아침 7시에나 침대에 누울 수 있었는데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다시 한 번 훌륭한 사람들과 같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에 심심한 뿌듯함을 느끼는 날이었다. 물론 일요일에 찾아온 피곤함도 심심했지만 말이다.

맥주는 총 5잔을 먹었고 다른 회원이 마련한 커피술은 몇 잔을 먹었는지 알 수가 없으며 위스키 두 잔에 마지막은 사진에 있는 소주로 장식했다. 저 사진을 찍은 시각이 새벽 4시 30분경으로 찍히는데 그야말로 광란의 멜팅팟 알코-올 파티였다.

Related Posts

이 주의 소비: 첼시 FC 홈경기 티켓

중곡동의 한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고딩 예비 한남충들의 최고 인기 스포츠는 뭐니뭐니해도 유럽 축구였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의 분위기를 그대로 타고 고등학교에 진학한 세대, 텍스트의 CM이 2D 그래픽의 FM으로 진화한 그야말로 개벽의 시대를 연 세대, 플스방이 전성기를 맞이하여 위닝이 스타와 쌍벽을 이루는 친목게임 양강구도의 희생양이 된 세대 등은 내 또래 문화를 설명하기에 손색이 없는 말들이다. (물론 이는 사실이 아니며 어디 가서 이야기하면 덕후 소리 듣는다.)

이 주의 소비: 서울대공원 동물원

이십대 중반을 지나며 나를 둘러싼 환경이 아닌 나라는 사람 자체의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인간이 아닌 생명체를 진정으로 아끼는 마음이 생겼다는 것이다. 내가 살 공간에 절대로 두지 않을 것으로 십자가와 동물을 꼽을 정도로 극단적인 태도를 취했던 나는 이제 매일 말도 안 되게 소중하거나 경이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각종 생명체들의 영상과 사진을 보며 벅찬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 되었다. 지극히 원리주의적인 환원론자로서 넓은 의미의 생태계, 좁은 의미로는 주변의 일상을 구성하는 여러 생명체의 존재를 분석 가능한 대상 그 이상으로는 이해하지 않던(하지만 소위 파블로프로 대변되는 행동주의로 빠지는 정도는 아니었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 이제는 그 존재 자체를 하나의 목적으로 두고 그들을 둘러싼 환경 전부에 나의 감정과 관심을 쏟고 있다. 혹자는 그런 마음을 사람한테 투자해보라는 핀잔을 주지만 후... 아직 그러기에 나의 인류애는 형편없이 부족하다. 나의 부족한 공감 능력이 이런 사회에 영향을 준 결과인지 이 공감 능력이 이 망한 사회에서 기인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말이다.

아무도 읽을 필요 없는 최근 코딩 근황

하지만 부족한 점은 여전히 많다. API의 측면에서는 사실상 운영&관리 경험이 전무하다고 봐야 하기 때문에 스케일러빌리티 이슈나 배포 등에 있어 아직 걸음마 단계에 불과함을 절실히 느꼈다. 같은 프로덕트의 여러 플레이버flavor 를 하나의 코드 베이스로 관리를 해나가는 것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짧은 나의 코딩 인생(...)을 되돌아봤을 때 결국 절실히 필요해지면 다 익혀왔으니 조금 더 이런 어려움의 시간이 길어지면 자연스럽게(?) 배우게 될 내용들이라는 희망은 잃지 않는다. 우리 존재 화이팅.

이 주의 소비: 유니클로 벨트

아메리칸 어패럴이 힙한 브랜드의 절정을 달리던 시절이 있었다. 명동 한복판에서 약간 골목길로 들어가는 곳에 2층짜리 매장을 두고 티셔츠를 색상별로 전부 다 사버리고 싶게 하는 그런 마약 같은 분위기를 뿜어내던 때였다. 아메리칸 어패럴의 가방과 티셔츠, 지퍼가 달린 후디와 지퍼가 달리지 않은 후디, 데님 셔츠까지 내가 소화할 만한 정도의 아이템은 이것저것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의 이야기는 AA의 호시절에 대한 것이 아니다.

이 주의 소비: 관악산 계곡의 백숙

그림일기장에도 쓰고 그렸던 기억이 나는 것을 보면 그래도 부모님 말씀 잘 듣고 그럭저럭 잘 따라나서던 초등학교 저학년쯤까지는 진관사라는 사찰 근처의 계곡에 여름마다 놀러갔던 것 같다. 흐린 기억을 열심히 반추해보면 꽤나 조용하고 한적하게 일상적인 한여름의 더위를 식히기 좋았던 곳이다. 그 시절에는 부모님의 빨간 르망을 타고 오갔을 그 곳을 찾아보니 은평구의 북쪽 끝자락에 있더라. 계곡 사진을 찾아보고 있으니 괜히 기분이 묘하다. 물에서 노는 것을 퍽 좋아하던 꼬마 이한결은 어떤 사람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