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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7017을 갔던 날 원래 하려고 했던 것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던 까르띠에 재단의 전시를 보러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일전에 적은 대로 맥주 몇 잔에 엉덩이가 무거워져버려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렇게 미뤘던 미술관행을 오늘에서야 이행했다.

전시는 솔직히 대단했다고 본다. 미술관에 도착해 H를 화장실에 보내고 매표소를 찾아 두리번거리던 나는, 문득 사람들이 그냥 전시관에 들락날락하는 것을 보았고 그제서야 전시가 무료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요지는 전시가 무료라서 대단하다는 것이 아니다. 대단한 것은, 단순히 까르띠에라는 브랜드가 갖는 여러 상업적인(아니 가격대의 접근성이 안 좋기 때문에 어쩌면 비상업적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까?) 이미지와는 별도로 예술 그 자체를 위해 존재하는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의 훌륭한 큐레이션이다. 시의성도 적절하고 국제사회의 불균형적인 지형도를 노골적으로 비판하며 그러면서도 고유의 예술성을 잃지 않은 작품들이 여럿 보였다. 과장없이 말해서 약간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그 일상적이면서도 비일상적인 결과물에 압도당하여 일종의 무기력감까지 느끼며 약간 도망치듯 미술관을 빠져나왔으니 말이다.

얼마나 도망을 쳤는지 전시가 3층까지 이어지는 줄도 모르고 2층만 보고 나와버렸다. 하지만 3층을 전혀 보지 않아도 이번 까르띠에 재단의 전시는 무척 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8월 15일까지다. 말했듯이 관람은 무료였고 볼 만한 멀티미디어가 적잖이 있으므로 3층까지 넉넉잡아 2시간 정도 본다 생각을 하면 될 것이다. 참고로 2층에서 도망을 친 나는 약 1시간 30분 정도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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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대 중반을 지나며 나를 둘러싼 환경이 아닌 나라는 사람 자체의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인간이 아닌 생명체를 진정으로 아끼는 마음이 생겼다는 것이다. 내가 살 공간에 절대로 두지 않을 것으로 십자가와 동물을 꼽을 정도로 극단적인 태도를 취했던 나는 이제 매일 말도 안 되게 소중하거나 경이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각종 생명체들의 영상과 사진을 보며 벅찬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 되었다. 지극히 원리주의적인 환원론자로서 넓은 의미의 생태계, 좁은 의미로는 주변의 일상을 구성하는 여러 생명체의 존재를 분석 가능한 대상 그 이상으로는 이해하지 않던(하지만 소위 파블로프로 대변되는 행동주의로 빠지는 정도는 아니었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 이제는 그 존재 자체를 하나의 목적으로 두고 그들을 둘러싼 환경 전부에 나의 감정과 관심을 쏟고 있다. 혹자는 그런 마음을 사람한테 투자해보라는 핀잔을 주지만 후... 아직 그러기에 나의 인류애는 형편없이 부족하다. 나의 부족한 공감 능력이 이런 사회에 영향을 준 결과인지 이 공감 능력이 이 망한 사회에서 기인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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