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의 소비: 서울로 7017


2017년 6월 17일 토요일은 상당히 바쁘게 시작되었다. 전날 술자리에서 온 숙취와 싸우는 와중에 아침을 챙겨먹으며 랩탑으로는 앤드류 응 교수의 머신러닝 강의를 들었고 약속 시각에 늦지 않게 바쁘게 채비를 차려 정오에 종각에 도착, 오랜 친구인 L과 함께 머신러닝 스터디를 마쳤다. 원래대로라면 이어지는 일정은 친애하는 H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기타노 다케시 특별전으로 상영하는 «키즈 리턴»을 감상하고 근처 어딘가에서 적당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으나, 늦은 점심을 먹으며 한 잔의 맥주를 곁들인 것이 화근이 되어 바쁘게 시작된 하루의 모든 건설적 의지가 사그러들고 영화표를 취소하고는 계속 맥주를 먹었다.

금 같은 토요일을 금빛 맥주와 함께 마무리하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었겠으나 창창한 초여름날을 쉬이 보내버리는 것이 아쉬워 자리를 옮겼다. 그렇게 찾아간 곳은 서울역. 이제는 해체되었지만 한동안 뜨거운 논란을 불러온 슈즈트리가 없는 서울의 하이라인, 서울로 7017은 깊은 고민없이 보자면 나름 나쁘지 않은 랜드마크라고 생각한다. 서울이라는 매력적인 도시의 풍경을 색다른 관점에서 색다른 태도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삶의 대부분을 메트로폴리탄으로 살아온 사람에게는 충분히 이색적인 경험이다.

한낮의 더위가 은은하게 남아 있는 서울로 7017을 걷다가 백미당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이좋게 사먹었다. 맛 차이가 분명하지 않은 우유 아이스크림과 두유 아이스크림 각각 3,500원. 얼굴이 나오지 않는 사진이 분위기 있는 사진이라는 신념을 가진 사진왕 꿈나무 H는 이 사진이 맘에 든다고 했다. 물론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만서도 맘에 드는 누군가의 맘에 드는 무언가를 만들어냈다는 것이 맘에 든다. 아직 서울로 7017를 가보지 않았다면 날이 더 더워지기 전에 한 번 들러보는 것을 추천해본다.

사당으로 돌아가 자기 전에 영화나 한 편 보려고 TV를 켰다. 왠지 모르게 «기쿠지로의 여름»이 보고 싶었는데 막상 그 영화는 없고 낮에 보려다 말았던 «키즈 리턴»이 IPTV에 있는 것을 보고는 왠지 모르게 완성도 있는 하루로 마무리하고자 즐겁게 영화를 보고 코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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