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의 소비: 어드밴티지 클린 슈즈


내가 처음으로 내 의지를 가지고 아디다스 신발을 샀던 것은 중학교 3학년이던 2003년의 일로, 당시에 샀던 신발은 친형의 조언을 통해 알게 된 검정색 스탠 스미스였다. 지금이야 거의 국민 신발이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을 만큼 대중적인 모델이지만 지금으로부터 14년 전만 해도 뚜렷하게 비주류적인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나 어쩌다가 신던 신발이었다. 게다가 하얀 바디에 녹색 포인트, 거기에 끈으로 매는 일반적인 형태의 것도 아니었다. 신발 밑창은 하얀 고무, 바디는 전체적으로 검은색이었고 발뒤 태그에는 아디다스 대신 스탠 스미스가, 신발 혓바닥에는 일러스트식으로 그려진 스탠 스미스의 얼굴이 있고, 마지막으로 끈이 아닌 벨크로로 발을 고정하는 형태의 신발이었다. 최근에 같은 신발을 좀 찾아본 적이 있는데 그 때와 완전히 같은 모델을 국내에서 파는 것은 본 적이 없다. 혹시나 보게 되는 사람이 있다면 내게 꼭 알려주면 좋겠다.

외고 입시를 하던 중학교 3학년 때는 줄기차게 잘 신고 다녔던 신발이다. 날 때부터 비주류의 길을 걷는 것을 좋아하던 나답게 맥스나 포스 같은 “흔한” 신발보다 더 맘에 들어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나는 교복과 함께라면 구두류의 신발만 교칙으로 허용하는 대원외고라는 학교에 합격했고 그 뒤로 3년 동안은 스탠 스미스 같은 운동화는 거의 잘 안 신게 되었던 것 같다. 나의 검정색 스탠 스미스는 그렇게 어느 순간 집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역사적인 대선이 있던 2017년 5월 9일, 친애하는 H와 독립문의 명물 대성집에서 점심으로 도가니탕에 소주를 격파하고 서촌을 놀러갔다. H가 가보고 싶었다는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먹고는 경복궁 담벼락을 타고 이제 십수시간 후면 주인이 정해질 청와대 인근을 돌아서 삼청동으로 빠져나갔다. 길을 걷던 중 삼청동 스닉솔 매장이 보였다. 살 만한 신발이 있을까 싶어 H와 함께 매장에 들어갔다.

뭐 대단한 물건은 없어보여서 한 바퀴를 뺑 돌고 나가려는 찰나, 시선을 사로잡는 신발이 나타났다. 하얀색 메쉬 소재 바디에 녹색 포인트, 거기에 벨크로를 달고 있던 그 신발을 보자 14년 전 철부지였던 이한결의 모습과 함께 그 때 신던 스탠 스미스의 노스탤지어가 아련하게 떠올랐고 저 신발과의 만남은 운명적인 것이며 저것을 꼭 사고 가게를 나서야겠다는 일종의 당위감이 물밀듯이 밀려들어왔다. 250 사이즈가 있냐고 물었고 종업원은 지금 전시되어 있는 것이 마지막이라는, 역시나 운명 같은 대답을 들려주었고 나는 그렇다면 그것을 가지고 가겠다고 당당하게 선언했다. 가격은 69,000원. 어린이날이라고 아버지께서 주신 용돈 50,000원에 피 같은 월급 19,000원을 더해서 구매했다. 30살의 이한결이 16살의 이한결을 만나 운명의 하이파이브를 하게 된 순간이었다.

는 개아무말이고 내가 산 신발은 아디다스 네오라는 라인에서 나온 어드밴티지 클린 슈즈라는 모델이고 스탠 스미스랑은 별로 관련도 없을 뿐더러 그냥 싸고 예쁘니까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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