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버피플스 에니스


전에 쓰던 안경은 2013 년 10 월부터 쓰던 것으로 지금은 없어진 종로의 알로 매장에서 구매한 것이다. 그보다 전에 쓰던 안경을 살 때 검은색 단색으로 된 플라스틱 테를 고르는 것을 못내 아쉬워하던 P 가 나의 생일 선물로 야심차게 고른, 적당히 얼룩이 들어간 갈색 계열의 플라스틱 테였다. 매일 같이 같은 안경을 쓰고 다니는 사람은 그 어떤 다른 테를 착용했을 때 보이는 본인의 모습이 어색하기 때문에 혼자서 객관적으로 어울리는 테를 찾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온 사람으로서 나름 괜찮은 테를 샀다고 생각했다. 마음속으로 정해둔 안경 교체 주기인 2 년이 지나고도 무리없이 썼다.

만 3 년이 되어가던 작년 초여름부터 안경테를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불의의 안와골절을 당하기도 했고 마침 안경테를 골라줄 마땅한 사람이 없는 기간을 겪기도 하면서 새 안경테를 살 시기가 점점 늦어졌다. 어느새 2017 년이 되었고 더는 미루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 월 18 일 한가람미술관에서 알폰스 무하 전시를 보고 건너편 스타벅스에 하릴없이 앉아 있다가 문득 안경 생각이 났다. 신사동으로 건너가서 백산안경점을 둘러봤다. 대단히 마음에 드는 것이 있지는 않았지만 새 안경테로의 여정의 스타트를 끊었다는 것에 의의를 둘 수 있는 행보였다.

그 뒤로는 인터넷을 통해 이리저리 간만 봤다. 4 월 1 일에는 그 다음 주에 있는 결혼식에서 신을 구두를 보려는 H 를 따라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을 갔다. 별 소득없이 늦은 점심이나 먹고 내려오던 중 안경테 부스가 눈에 띄었고 거기서 맘에 드는 안경테를 찾을 수 있었다. 올리버피플스의 에니스라는 제품으로 H 의 평에 따르면 렌즈를 감싸고 있는 부분도 괜찮고 피어싱을 여럿 끼고 있는 내 귀에 비해 폭이 넓은 일반 플라스틱 테보다 금속 소재로 가늘게 빠진 안경 다리 부분도 괜찮다고 했다. 그럴싸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서 그걸 사기로 마음 먹었다.

하지만 백화점에서 무엇을 산다고 하면 나는 모 백화점을 다니는 친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다. 바로 전화를 걸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그의 백화점에 있는 매장에도 한 번 들러보기로 했다. 왜냐면 직원 할인은 무척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

4 월이 지나도록 형에게 안경에 대해 다시 물어보기는 커녕 백화점 근처까지 가도 뭘 들러서 구경을 하고 고르고 써보고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게 귀찮아서 아무 것도 하고 있지 않은 내 게으른 엉덩이를 보면서 그냥 콜렉트 안경에서 봤던 테를 사야겠다고 확실히 마음을 먹었다.

5 월 1 일 테를 사고 렌즈를 주문했고 5 월 3 일에 찾아왔다. 안경테 가격은 45 만원이고 렌즈는 싸게 12 만원, 합이 57 만원이다. 눈썹 왁싱까지 받은 뒤라 눈매가 유독 깔끔한 상태인데 그래서인지 더욱 내 얼굴과 잘 어울리는 것 같은 아이템이다. 원체 불편함을 잘 못 느끼는 타입이긴 하지만 기능적으로 아직까지 아쉽다거나 하는 점은 발견하지 못했다. 크게 유행을 탔던 제품 라인도 아니고 유행을 탈 여지가 적은 모양인 것도 맘에 들었다. 나란 사람은 변화의 폭이 적은 것을 취향의 중요한 맥락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안경 이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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