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철학관


당원으로서 대선에 무슨 기여를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지난 토요일 오후 시간을 투자해서 간단한 웹페이지를 만들었다. 선대위 SNS 본부에서 일하는 친구 B의 깔끔한 기획을 바탕으로 같은 팀에서 일하는 분들의 많은 도움을 얻어 적당한 재미와 적당한 컨텐츠를 가진 결과물이 나왔다. 포스트 댓글을 보면 뭐 좀 엉망진창이기는 하지만 대선 홍보라는 이슈에 저 정도면 무난한 편이라고 정신승리를 하면서…

시간도 많이 없었고 여러 의미에서 갖다 쓸 수 있는 리소스도 부족한 상황에서 5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이트에 들어가서 이것저것 눌러는 봤다고 하니 뿌듯할 따름. 큰 주목을 받았을리는 없지만 매체에서도 다뤄주었으니 조금 더 뿌듯할 따름.

특별당비는 안 냈지만 SNS 본부에서 일하는 분들께 피자 몇 판 사드리고 지역위 운용자금에 몇 푼 보탰고 오늘은 어쩌다가 강남역 유세에도 참여했으니 이 정도면 평당원으로서 더 큰 책임감을 느낄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19대 대선은 기호 5번 심상정입니다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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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곡동의 한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고딩 예비 한남충들의 최고 인기 스포츠는 뭐니뭐니해도 유럽 축구였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의 분위기를 그대로 타고 고등학교에 진학한 세대, 텍스트의 CM이 2D 그래픽의 FM으로 진화한 그야말로 개벽의 시대를 연 세대, 플스방이 전성기를 맞이하여 위닝이 스타와 쌍벽을 이루는 친목게임 양강구도의 희생양이 된 세대 등은 내 또래 문화를 설명하기에 손색이 없는 말들이다. (물론 이는 사실이 아니며 어디 가서 이야기하면 덕후 소리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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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대 중반을 지나며 나를 둘러싼 환경이 아닌 나라는 사람 자체의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인간이 아닌 생명체를 진정으로 아끼는 마음이 생겼다는 것이다. 내가 살 공간에 절대로 두지 않을 것으로 십자가와 동물을 꼽을 정도로 극단적인 태도를 취했던 나는 이제 매일 말도 안 되게 소중하거나 경이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각종 생명체들의 영상과 사진을 보며 벅찬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 되었다. 지극히 원리주의적인 환원론자로서 넓은 의미의 생태계, 좁은 의미로는 주변의 일상을 구성하는 여러 생명체의 존재를 분석 가능한 대상 그 이상으로는 이해하지 않던(하지만 소위 파블로프로 대변되는 행동주의로 빠지는 정도는 아니었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 이제는 그 존재 자체를 하나의 목적으로 두고 그들을 둘러싼 환경 전부에 나의 감정과 관심을 쏟고 있다. 혹자는 그런 마음을 사람한테 투자해보라는 핀잔을 주지만 후... 아직 그러기에 나의 인류애는 형편없이 부족하다. 나의 부족한 공감 능력이 이런 사회에 영향을 준 결과인지 이 공감 능력이 이 망한 사회에서 기인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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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부족한 점은 여전히 많다. API의 측면에서는 사실상 운영&관리 경험이 전무하다고 봐야 하기 때문에 스케일러빌리티 이슈나 배포 등에 있어 아직 걸음마 단계에 불과함을 절실히 느꼈다. 같은 프로덕트의 여러 플레이버flavor 를 하나의 코드 베이스로 관리를 해나가는 것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짧은 나의 코딩 인생(...)을 되돌아봤을 때 결국 절실히 필요해지면 다 익혀왔으니 조금 더 이런 어려움의 시간이 길어지면 자연스럽게(?) 배우게 될 내용들이라는 희망은 잃지 않는다. 우리 존재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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