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지만, 너는 평등하지 않다


솔직히 이 글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을 살면서 대면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비슷한 어조의 글을 읽거나 이야기를 들을 때 내심 저게 쉐도우복싱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2016년 말에 실제로 이 글의 대상과 상당 부분 일치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었고, 이야기를 하면서 대단히 놀랐고 일련의 안쓰러움을 뛰어넘어 이 글의 어조에서 느껴지는 일종의 분노까지 느낄 수 있었다. 이 글은 소위 “명예 남성”(의 쓰임새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지는 않아 틀린 용법일 가능성도 있다.)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주제로 한다.

글을 읽으며 지난 토요일에 별로 볼 것도 없었던 르누아르 전에 가느니 강남역 행진에나 참석할 걸하는 아쉬움이 든다. 마땅히 버릴 부분없이 깔끔한 글이다.

미안하지만, 너는 평등하지 않다

2017년 1월 21일 토요일에 열린 세계여성공동행진(이하 행진)에 대한 반응으로 소셜 미디어에 돌아다니는 글이 있다. 그 글의 도입부는 다음과 같다. “내가 행진에 대해 지지하지 않는다고 해서 여성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것은 아니다. 내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2류 시민(second class citizen)으로 살아간다고 느끼지도 않는다.” 지금 내가 쓰는 글은 이에 대한 대답이다.

고마워 해라. 네가 목소리를 낼 기회를 준 그 여자들에게 고마워 해라. 그 발언권을 네게 주기 위해 체포되고 수감되고 얻어 맞고 최루가스에 노출된 그 여자들에게 고마워 해라. 그 목소리를 위해 끝내 물러서지 않고 끈기 있게 싸운 여자들에게 고마워 해라. 네 목소리를 위해 행진하고 시위하고 집회하는 것보다 “더 나은 할 것”이 없었던, 그래서 자신의 삶을 팽개치고 운동에 매진해야 했던 그 여자들에게 고마워 해라. 이 노력들이 있기 때문에 네가 “2류 시민”으로 살아간다고 느끼지 않는 것이다. 이 때문에 네가 “평등”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수전 B. 앤서니와 앨리스 폴이 네게 준 투표권에 고마워 해라.

엘리자베스 스탠튼이 네게 일할 수 있는 권리를 준 것에 고마워 해라.

모드 우드 파크가 네 분만 전 간호(prenatal care)를 위해, 네 남편과는 구분되는 너의 별개의 신원를 위해 노력한 것에 고마워 해라.

로즈 슈나이더만이 네게 준 인간답게 일할 수 있는 환경에 고마워 해라.

엘리너 루즈벨트와 몰리 듀슨이 네게 준, 여성이 실제로 정치에 참여하고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환경에 고마워 해라.

마가렛 생어가 네게 준 피임에 대한 법적 자유에 고마워 해라.

캐롤 도너가 네게 준 출산 관련 건강상태(reproductive health)에 대한 권리에 고마워 해라.

사라 뮬러가 네게 준 평등 교육에 고마워 해라.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 섀넌 터너, 글로리아 스타이넘, 젤다 킹오프 노드링거, 로자 파크스, 앤젤라 데이비스, 말리카 사다 사, 와가트웨 완주키, 아이다 B. 웰스, 말랄라 유사프자이에게 고마워 해라. 지금 네가 가진 권리의 절반조차 가지지 못한 채 살아갔던 네 어머니, 그의 어머니, 그리고 그의 어머니에게 고마워 해라.

네가 스스로 결정할 자유가 있고, 목소리를 내고 그 목소리가 전달되며, 투표하고, 일하고, 자기 몸에 대한 결정권을 갖고, 스스로를 방어하고, 가족을 보호할 수 있는 것은 그 날 (거시적 의미의) 행진에 참여한 여자들 덕분이다. 너는 이런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너는 그 권리를 태어날 때부터 가질 수 있었다. 너는 그 여자들, 미소지니와 싸우고 가부장제를 밀어낸 그 강인한 여자들의 노력의 결실을 아무 노력없이 얻은 것뿐이다. 그런데도 너는 그렇게 얻어낸 기반 위에서 그런 키보드질이나 하고 있다. 자기 만족을 위한 투사. 그저 받기만 하면서, 현실을 부정하고, 스스로 만들어낸 망상적인 평등에 둘러싸인 채 말이다.

너는 평등하지 않다. 스스로 그렇게 느낄 수는 있겠지만. 너는 여전히 같은 일을 하면서 남성보다 더 적은 돈을 받는다. 너가 CEO가 되든, 운동 선수가 되든, 배우가 되든, 의사가 되든 마찬가지다. 정부에서 일을 해도, 테크 산업에서 일을 해도, 헬스케어 업계에서 일을 해도 마찬가지다.

너는 여전히 네 몸에 대한 완전한 결정권이 없다. 남성은 여전히 네 자궁에 대해, 분만 전 간호에 대해, 결정할 권리에 대해 자기네들끼리 설전을 벌이고 있다.

너는 여전히 너의 기본적 위생에 대한 니즈에 세금을 물고 있다. (주: 미국의 대부분의 주에 생리대 및 탐폰이 일상에 필수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별도의 세금이 부과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이야기.)

여전히 밤에 돌아다니기 위해서는 호신 장비를 들고 다녀야 한다. 여전히 강간을 당했을 때 왜 야밤에 취해서 돌아다니고 있었는지 재판장에서 어필해야 한다. 남자가 성폭행을 시도할 때에도 너의 행동에 대해 정당화할 이유를 찾아야 한다.

네겐 여전히 유급(무급일지라도!) 출산 휴가가 없다. 네 몸이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더라도, 산후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을지라도 일을 가야 한다.

여전히 공공장소에서 모유 수유를 하는 것에 대해 논쟁을 벌여야 한다. 여전히 다른 여자들에게 모유 수유가 너의 권리라는 것을 주장해야 한다. 여전히 너의 가슴은 타인에게 거슬리는 존재인 것이다.

너는 여전히 대상화되고 있고 길에서 휘파람 소리를 듣고 있으며 성적으로 구별지어진다. 너는 여전히 너무 말랐다느니 살쪘다느니, 너무 젊다느니 늙었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여전히 너는 “우아하게 늙은 것에” 칭송을 받는 반면 남성은 “잘 늙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여전히 여성답게 옷을 입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너의 내면보다 겉으로 보이는 것에 평가를 받는다. 네가 가진 가방이 어떤 브랜드인지가 네 학위보다 더 중요한 세상이다.

너는 여전히 네 남편과 남자친구에게 학대 받고 있다. 여전히 네 파트너에게 살해를 당하고 친구에게 구타를 당한다.

네가 만약 백인이 아니거나, 동성애자거나, 여자 트랜스젠더라면 상황은 더더욱 안 좋아진다. 여전히 괴롭힘 당하고 과소평가되며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는다.

네 딸들은 여전히 똑똑하다는 이야기를 듣기에 앞서 예쁘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사내 아이들이 “남자들은 원래 그렇지”라는 이야기를 듣는 와중에 네 딸들은 여전히 행동을 조심히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네 딸들은, 사내 아이들이 그들을 좋아하기 때문에 머리카락을 당기거나 꼬집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여전히 듣고 있다.

너는 평등하지 않다. 네 딸들도 평등하지 않다. 너는 여전히 구조적으로 억압 받고 있다.

에스토니아는 부모 모두에게 첫 435일 동안 유급으로 인정되는 총 3년 동안의 출산 휴가를 인정한다. 미국에서는 출산 휴가를 전제하는 정책 자체가 없다.

싱가폴의 여성은 밤에 외출하는 것을 안전하게 느낀다. 미국 여성은 그렇지 않다.

뉴질랜드의 남녀 임금 격차는 5.6%로 세계 최소다. 미국의 남녀 임금 격차는 20%다.

아이슬랜드의 여성 CEO 비율은 세계 최고로 44%다. 미국은 4%다.

미국의 여성 인권은 45위로, 르완다, 쿠바, 필리핀, 자메이카보다 낮은 순위다.(주: 통계의 원 링크는 원문에 없다.)

하지만 나는 이해한다. 너는 이런 현실을 인정하고 피해자가 되기 싫은 것이다. 너는 페미니즘이 지저분한 단어라고 생각한다. 평등을 위해 싸우는 것을 세련되지 않은 행동으로 본다. 계집애(pussy)라는 단어를 싫어하면서도 네 기준에서 남성적이지 않은 남자들에게 사용할 때는 괜찮아한다. “그의” 여자에게 무엇이든 하게 “허락해주는” 그런 남자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이해한다. 너는 페미니스트들이 감정적이고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왜 여자들이 지금의 삶에 만족하지 않는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너는 지금 이대로의 삶은 받아들이는데 불편함이 없을 것이다.

이해한다. 너는 스스로 권리를 부여받았다고 느끼고 싶은 것이다. 억압 받고 있다는 걸 믿고 싶지 않은 것이다. 왜냐하면 그걸 믿는 순간 너는 스스로가 “2류 시민”이라는 걸 인정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느낌을 받고 싶지 않은 것, 이해한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내가 너를 위해 행진하겠다. 내가 너의 딸, 그리고 그의 딸을 위해 행진하겠다. 아마도 너는 세상이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네가 지금 가진 권리를 항상 가지고 있었다고 믿을 수도 있다. 그런 건 괜찮다. 왜냐면 다른 여성을 보호하고 지지하는 그 여자들은 네가 그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쓰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본인들의 미래와 그보다 더 미래에 올 여성의 미래를 신경쓸 뿐이다.

눈을 떠라. 크게 떠라. 왜냐하면 지금 내가 여기서, 수백만의 다른 여성과 함께 너는 평등하지 않다고 얘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네가 생각하는 평등은 허상이다. 교묘한 속임수다. 미안하지만, 너는 평등하지 않다. 네 딸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우리가 너를 위해 행진하겠다. 너를 위해 싸우고 너를 위해 일어서겠다. 그리고 언젠가 너는, 지금처럼 평등하다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평등해질 것이다.

디나 레이거만, 2017

Related Posts

새 집

올해 6 월 끝자락은 내가 사당에 거주한 지 2 년이 되는 시기이자, 방 계약이 끝나감에 따라 불가피하게 이사를 해야 하는 시기이다. 이사를 갈 동네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 것은 지난 2 월부터였다. 당시에는 몇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첫 번째 선택지는 판교로, 7 월에 판교로 이사가는 회사를 다니기에 최적화된 곳이다. 두 번째 선택지는 판교로 출퇴근이 편한 서초구, 강남구의 남쪽 동네로, 회사까지 다소 시간을 걸리더라도 서울라이트로서의 생활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의지가 반영된 곳이다. 세 번째 선택지는 한남동 근처였는데, 이것은 그야말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여가 시간의 유흥에 몰빵을 한 옵션이었다. 내가 속으로 가장 원했던 곳은 어디였을까? 당연히 한남동이었다.

J. M. Weston 골프 더비 슈즈

발이 작은 사내로 30 년 남짓을 살았다. 발이 작은 사내로 살아보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한줄평을 해보자면, 발이 작은 사내로 사는 것에 크게 불편함은 없다. 다만 다른 신체에 비해 발이 크게 작은 탓인지, 일반적인 발보다 발등이 높은 편이라 착화감이 떨어질 때가 있다. 하지만 30 여년을 그렇게 살면 그마저도 익숙하다. 그냥 나는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 사람인 것이다.

락다운

아래는 일요일 밤에 일어난 일로, 형 전화기의 인스타그램으로 로그인해 남긴 글이다. 결과적으로 나는 현관문 시건과 관련된 악몽에 시달리며 잠을 잤고, 형이 차려준 아침을 먹고 혼자 우두커니 거실에 앉아서 TV 를 좀 보다가 사당으로 돌아가 마스터키로 연 뒤로 별 이유없이 정상 동작하는 도어락을 확인하고 씻고 잘 출근했다.

발뮤다 에어엔진

그리고 별 이유없이 공기청정기를 하나 샀다. 전부터 눈여겨보고 있던 발뮤다의 에어엔진이다. 공기청정기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다. 원래 관심이 있던 아이템도 아니고 내 생활공간에서 써봤던 것도 아니라 다른 제품과 비교를 하거나 평을 하기가 어렵다. 다만 잠들기 전에 새싹 모드로 에어엔진을 틀어놓고 자면 일어나서 내 코로 느껴지는 공기에서 상쾌한 청량감이 느껴지는 기분이다.

PT

작년 연말은 여러모로 몸이 힘들었던 나날들로 기억이 될 것이다. 고통의 1 번 타자는 12 월 중순 왼쪽 팔꿈치에 받은 거미줄 모양 문신이었다. 그 때까지 내게 문신의 고통이란, 그냥 받는 것 자체가 무척 아프기 때문에 더 아프다고들 하는 곳에 받더라도 체감하는 상대적인 양은 크게 다르지 않을 그런 것이었지만, 팔꿈치에 문신을 받아보고는 더 아프다고들 하는 곳은 확실히 더 아프다는 결론을 내렸다. 문신 받는 위치가 관절에 있다보니 여러모로 신경쓰이는 것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