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진짜 얼마만에 자정 이전에 집으로 들어온 것인지 모르겠는데 그건 차치하고 갑자기 오늘 출근길에 있었던 일이 하나 생각난다.

지하철에 앉아서 조용히 책이나 읽으면서 회사를 가고 있는데 옆에 빈 자리로 개량한복 풍의 옷을 입은 아저씨가 앉았다. 그는 앉자마자 이어폰을 꼽고 있던 나의 울긋불긋한 팔을 가리키며 뭐라고뭐라고 했다. 이어폰에서 흘러 나오던 음악의 볼륨이 크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정확히 들을 수는 없었지만 뭔가 이게 영구적인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질문을 반말로 했던 것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수 초 동안 나는 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민했다. 여러 후보 중 초면인데 반말하지 말라고 대답할 것인지 그냥 못 들은 척 넘어갈 것인지 두 가지 선택지를 남기고 후자를 선택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앉아 있다가 한 두 정거장 뒤에 총총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연민과 분노가 적절히 섞인 감정을 느끼고는 이내 다시 책으로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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