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삶에서 그닥 중요하지 않은 것


당신 삶에서 그닥 중요하지 않은 것 중 발췌

  • 다른 사람 모두를 행복하게 하려고 애쓰는 것: 본인에게 지치는 일일뿐더러 가능하지도 않은 일이다. 네 행복이나 챙기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최선책.

  • 남들이 너 이렇게 살아야 한다하는 것에 귀 기울이는 것: 보통의 인간은 정작 본인의 삶은 어떻게 해야할지 모른다. 남들이 책임져주지도 않을 결정을 내리기 전에 네 본연의 목소리를 들어라.

  • 과거나 미래에 사는 것: 과거에 살면 후회만 하고 미래에 살면 걱정만 한다.

  • (여러 의미에서) 내려놓지 못하는 것: 나중에 더 좋은 것을 못 찾을 거라는 두려움에 지금 손에 쥔 것을 내려놓지 못하는 것은 대체로 어리석은 선택이다.

  • 널 좋아하지 않거나 너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 어쩔 수 없다고 하는 것은 변명일 뿐, 네가 그 사람들과 시간을 보낼 의무는 어디에도 없다.

놓고 보면 진부한 이야기지만 작심삼일의 생물인 인간이 그나마 지속적으로 동기부여되기 위해서는 진부한 이야기일지라도 반복적으로 접해야 마땅하다.

Related Posts

이 주의 소비: 첼시 FC 홈경기 티켓

중곡동의 한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고딩 예비 한남충들의 최고 인기 스포츠는 뭐니뭐니해도 유럽 축구였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의 분위기를 그대로 타고 고등학교에 진학한 세대, 텍스트의 CM이 2D 그래픽의 FM으로 진화한 그야말로 개벽의 시대를 연 세대, 플스방이 전성기를 맞이하여 위닝이 스타와 쌍벽을 이루는 친목게임 양강구도의 희생양이 된 세대 등은 내 또래 문화를 설명하기에 손색이 없는 말들이다. (물론 이는 사실이 아니며 어디 가서 이야기하면 덕후 소리 듣는다.)

이 주의 소비: 서울대공원 동물원

이십대 중반을 지나며 나를 둘러싼 환경이 아닌 나라는 사람 자체의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인간이 아닌 생명체를 진정으로 아끼는 마음이 생겼다는 것이다. 내가 살 공간에 절대로 두지 않을 것으로 십자가와 동물을 꼽을 정도로 극단적인 태도를 취했던 나는 이제 매일 말도 안 되게 소중하거나 경이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각종 생명체들의 영상과 사진을 보며 벅찬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 되었다. 지극히 원리주의적인 환원론자로서 넓은 의미의 생태계, 좁은 의미로는 주변의 일상을 구성하는 여러 생명체의 존재를 분석 가능한 대상 그 이상으로는 이해하지 않던(하지만 소위 파블로프로 대변되는 행동주의로 빠지는 정도는 아니었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 이제는 그 존재 자체를 하나의 목적으로 두고 그들을 둘러싼 환경 전부에 나의 감정과 관심을 쏟고 있다. 혹자는 그런 마음을 사람한테 투자해보라는 핀잔을 주지만 후... 아직 그러기에 나의 인류애는 형편없이 부족하다. 나의 부족한 공감 능력이 이런 사회에 영향을 준 결과인지 이 공감 능력이 이 망한 사회에서 기인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말이다.

아무도 읽을 필요 없는 최근 코딩 근황

하지만 부족한 점은 여전히 많다. API의 측면에서는 사실상 운영&관리 경험이 전무하다고 봐야 하기 때문에 스케일러빌리티 이슈나 배포 등에 있어 아직 걸음마 단계에 불과함을 절실히 느꼈다. 같은 프로덕트의 여러 플레이버flavor 를 하나의 코드 베이스로 관리를 해나가는 것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짧은 나의 코딩 인생(...)을 되돌아봤을 때 결국 절실히 필요해지면 다 익혀왔으니 조금 더 이런 어려움의 시간이 길어지면 자연스럽게(?) 배우게 될 내용들이라는 희망은 잃지 않는다. 우리 존재 화이팅.

이 주의 소비: 유니클로 벨트

아메리칸 어패럴이 힙한 브랜드의 절정을 달리던 시절이 있었다. 명동 한복판에서 약간 골목길로 들어가는 곳에 2층짜리 매장을 두고 티셔츠를 색상별로 전부 다 사버리고 싶게 하는 그런 마약 같은 분위기를 뿜어내던 때였다. 아메리칸 어패럴의 가방과 티셔츠, 지퍼가 달린 후디와 지퍼가 달리지 않은 후디, 데님 셔츠까지 내가 소화할 만한 정도의 아이템은 이것저것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의 이야기는 AA의 호시절에 대한 것이 아니다.

이 주의 소비: 관악산 계곡의 백숙

그림일기장에도 쓰고 그렸던 기억이 나는 것을 보면 그래도 부모님 말씀 잘 듣고 그럭저럭 잘 따라나서던 초등학교 저학년쯤까지는 진관사라는 사찰 근처의 계곡에 여름마다 놀러갔던 것 같다. 흐린 기억을 열심히 반추해보면 꽤나 조용하고 한적하게 일상적인 한여름의 더위를 식히기 좋았던 곳이다. 그 시절에는 부모님의 빨간 르망을 타고 오갔을 그 곳을 찾아보니 은평구의 북쪽 끝자락에 있더라. 계곡 사진을 찾아보고 있으니 괜히 기분이 묘하다. 물에서 노는 것을 퍽 좋아하던 꼬마 이한결은 어떤 사람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