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여 잘 있거라, 어니스트 헤밍웨이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신성이니 영광이니 희생이니 하는 공허한 표현을 들으면 언제나 당혹스러웠다. 이따금 우리는 고함 소리만 겨우 들릴 뿐 목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 빗속에서 그런 말을 들었다. 또 오랫동안 다른 포고문 위에 붙여 놓은 포고문에서도 그런 문구를 읽었다. 그러나 나는 신성한 것을 실제로 본 적이 한 번도 없으며, 영광스럽다고 부르는 것에서도 조금도 영광스러움을 느낄 수 없었다. 희생은 고깃덩어리를 땅속에 파묻는 것 말고는 달리 할 것이 없는 시카고의 도살장과 같았다. 차마 참고 듣기 힘든 말들이 너무도 많은 까닭에 나중에는 지명만이 위엄을 갖게 되었다. 숫자나 날짜 같은 것들이 지명과 함께 우리가 말할 수 있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유일한 것들이었다. 영광이니 명예니 용기니 신성이니 하는 추상적인 말들은 마을의 이름이나 도로의 번호, 강 이름, 연대의 번호나 날짜와 비교해 보면 오히려 외설스럽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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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의 고독,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

이번 주말은 최대한 아무 것도 하지 말자는 주의로 (다행히도 일요일의 약속 두 개가 연달아 취소되는 쾌거가 있었다.) 지지부진하던 독서에 많은 시간을 쏟았다. 마르케스가 그리는 로맨스와 이성애 안에서의 여성관을, 마술적 사실주의라는 그야말로 마법과도 같은 단어로 묘사된 체계 안에서 이해하고 감탄하기엔 아무래도 불편했다.

더블린 사람들, 제임스 조이스

이런 말들이 나한테 이토록 따분하고 차갑게 보이는 건 도대체 무슨 영문일까? 당신의 이름이 될 수 있을 만큼 애틋한 단어가 없는 탓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