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밭일기, 이유근


부모와 자녀간의 관계는 일방적이고 무연한 방식으로 형성된다. 나는 이 대전제로부터 핵가족이라는 구조를 이해하는 사람이다. 일방적이고 무연하게 만들어진 관계에서 다른 가족 구성원은 철저한 타인이다. 이 내재적 타인성은 서로 생활 공간을 공유하지 않게 되는 특정 시점부터 부지런히 심화되는데 그 거리감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게 되면 사실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하기가 어렵다고 본다.

아버지가 책을 한 권 쓰셨다. 지금의 제법 멋드러진 주택이 들어서기 이전, 남양주 수동의 작은 땅에서 보낸 시간을 담아낸 책이다. 지난 주부터 짬을 내어 책을 읽었다. 2010 년 봄부터 2013 년 겨울까지의 이야기였다. 유럽 여행을 다녀와 용산에서 카투사로 복무하고, 전역 후 복학 준비를 하고 나름 성공적인 한 학기를 보내기까지의 기간이다. 당시의 나는 여러모로 모가 나고 굴곡이 심한 사람이었다. 잠깐 머리에 떠올리기만 해도 나의 언행 때문에 한숨이 나오는 기억이 한둘이 아니다. 당연히 부모와의 마찰도 심했다(고 본다).

책의 제목이 <산밭일기>인 만큼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지는 않는다. 잠깐 언급이 된다고 한들 한두 줄에 스쳐지나가는 정도다. 하지만 책에 드러나는 한없이 소소하고 한가로워 보이는 삶의 이면에는 그야말로 질풍노도의 시기를 헤쳐가는 구성원이 있었다. 당시에는 나를 둘러싼 많은 것이 맘에 들지 않았고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것들 투성이라고 생각했다. 최근에 와서야 비로소 과거의 그 불안정한 자아를 온전히 받아들이기 시작한 나는(이것은 또 아주 다른 범주의 이야기다.) 차분하고 간결하게 써내려간 아버지의 글을 읽으며 많은 생각을 했다. 물론 그 많은 생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가족이었다. 어쩌면 나의 대전제에 작은 예외의 틈을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며 부모가 어떤 사람이었고 지금은 어떤 사람인지, 전보다는 더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기분이 들었다.

당연하게도 이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특수한 입장에서의 서평이다. <산밭일기>는 섬세하고 예민한 사람의 담담한 산밭체험기다. 대부분의 대형 서점, 유통점에서 <산밭일기>라는 키워드로 검색하면 구매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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