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미셸 투르니에


그렇지만 내 생각으로는 사랑이란-만약 그것이 잴 수 있는 것이라면-그 깊은 정도보다는 면적의 중요성으로 훨씬 더 잘 측정될 수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내가 어떤 여자에 대하여 느끼는 사랑은 내가 동시에 그녀의 손, 눈, 거동, 흔히 입는 옷, 늘 지니는 물건, 그 여자가 접촉했을 뿐인 사람들, 그녀가 몸담아 움직인 풍경, 그 여자가 수영한 바다 등을 사랑한다는 사실에서 측정될 수 있다……. 내가 보기에는 그 모든 것이 다 넓이인 것 같다! 진부한 감정이 직접적으로-깊이로-섹스 자체만을 목표로 삼고 그 밖에 모든 것은 그저 무심한 그늘 속에 묻어두는 것과는 전연 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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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밭일기, 이유근

아버지가 책을 한 권 쓰셨다. 지금의 제법 멋드러진 주택이 들어서기 이전, 남양주 수동의 작은 땅에서 보낸 시간을 담아낸 책이다. 지난 주부터 짬을 내어 책을 읽었다. 2010 년 봄부터 2013 년 겨울까지의 이야기였다. 유럽 여행을 다녀와 용산에서 카투사로 복무하고, 전역 후 복학 준비를 하고 나름 성공적인 한 학기를 보내기까지의 기간이다. 당시의 나는 여러모로 모가 나고 굴곡이 심한 사람이었다. 잠깐 머리에 떠올리기만 해도 나의 언행 때문에 한숨이 나오는 기억이 한둘이 아니다. 당연히 부모와의 마찰도 심했다(고 본다).

피로사회, 한병철

문화 힙스터라면 이미 한 번쯤 읽어봤을 정도로 출간된 지 수 년이 되어가는 책인 만큼, <피로사회>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이 피로사회라는 구조 자체에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진 우리들에게는 다소 식상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오히려 그 식상함은, 이 사회가 흘러온 역사와 앞으로 나아갈 방향, 다뤄질 담론을 무려 2010년에 지적해낸 저자의 날카로운 통찰력의 방증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