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저스티스, 김만권


포스트민주주의 사회에서도 민주주의의 모든 특성, 즉 “자유선거, 경쟁하는 복수정당, 자유로운 공개토론, 인권, 공무의 일정 수준의 투명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모든 핵심적 의사결정이 민주주의 이전 시대마냥 “권력의 중심 주위에 모여서 특권을 추구하는 소규모 엘리트와 부유한 집단”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 포스트민주주의 사회에서 새로운 주역은 지구화라는 현상 속에서 초국가 기업으로 성장한 경제 엘리트 집단이다. 이런 이유로 포스트민주주의를 소수의 정치 엘리트들과 경제 엘리트들이 연합해 지배하는 새로운 봉건주의라고 비판하곤 한다.

자유의 가치는 그 자유를 자각할 수 있을 만큼의 지성과 그것을 실현할 수 있을 만큼의 최소한의 경제적 토대가 있을 때 실현된다는 것이다. 만약 사회의 한 계층에 무지와 비곤, 자유를 실현할 수단이 현저하게 결여되어 있다면 그 사회에서 자유의 가치는 구성원들에게 서로 다른 것이 되고 만다. 그렇기에 우리는 보상을 통해 불운한 사회구성원들이 자유의 가치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그들을 적정한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따라서 정의로운 사회는 그 사회가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자유의 실현을 위해 사회구성원들에게 적합한 기본 교육을 제공해야 하며, 나아가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을 만큼의 사회적 재화를 분배해야만 한다.

이렇듯 롤스는 정의가 당연히 다루어야 할 대상은 분배지 생산이 아님을 명료하게 지적한다. 동시에 생산에 집착하는 정의의 지침은 공리주의의 사례에서 우리가 이미 살펴보았듯 인권을 위반할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다는 점 또한 지적한다. 그렇기에 공리주의는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지침으로서 부적절하다. 정의의 핵심은 개인의 권리를 위반하지 않으면서 기본적 자유, 인생의 전망을 실현할 기회, 사회경제적 자원을 적절하게 분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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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밭일기, 이유근

아버지가 책을 한 권 쓰셨다. 지금의 제법 멋드러진 주택이 들어서기 이전, 남양주 수동의 작은 땅에서 보낸 시간을 담아낸 책이다. 지난 주부터 짬을 내어 책을 읽었다. 2010 년 봄부터 2013 년 겨울까지의 이야기였다. 유럽 여행을 다녀와 용산에서 카투사로 복무하고, 전역 후 복학 준비를 하고 나름 성공적인 한 학기를 보내기까지의 기간이다. 당시의 나는 여러모로 모가 나고 굴곡이 심한 사람이었다. 잠깐 머리에 떠올리기만 해도 나의 언행 때문에 한숨이 나오는 기억이 한둘이 아니다. 당연히 부모와의 마찰도 심했다(고 본다).

피로사회, 한병철

문화 힙스터라면 이미 한 번쯤 읽어봤을 정도로 출간된 지 수 년이 되어가는 책인 만큼, <피로사회>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이 피로사회라는 구조 자체에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진 우리들에게는 다소 식상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오히려 그 식상함은, 이 사회가 흘러온 역사와 앞으로 나아갈 방향, 다뤄질 담론을 무려 2010년에 지적해낸 저자의 날카로운 통찰력의 방증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