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니엘 호손 단편선


초기 작품들을 봤을 때는 미 동부의 자연주의와 신비주의, 인간의 태생적 숙명과 종교적 굴레, 미신과 네이티브 어메리칸 등의 소재가 한데 뒤섞인 풍의 이야기만 주구장창 이어지는 듯했으나 후기의 작품으로 갈수록 사회와 풍자, 기계 문명과 과학 등의 이야기로 번져가는 것을 보며 스펙트럼이 넓은 사람이구나 했는데 뒤에 옮긴이의 평을 읽어보니 이 모든 작품이 사실상 하나의 궤로 묶일 수 있다고 하는 것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책을 너무 천천히 읽었다는 것이 변명이라면 변명이다.

호손은 사물의 이치를 결코 단순하게 피상적으로 받아들이거나 이것 아니면 저것 식의 이분법적 재단으로 파악하지 않는다. 그는 근본적으로 사색적이고 무엇보다도 사물과 삶의 이치에 대한 단순한 논리나 명쾌한 해석에 항상 경계적이고 회의적인 태도를 취하는 작가이다. 그래서 그는 사물과 삶의 양상에 대하여 이중적인 또는 다층적인 층면을 늘 살피는 복합적인 관점을 취해 온 것이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분명한 미국의="" 운명="">에의 확신, 명쾌한 진보 논리, 안이한 낙관주의 등 당대 미국 사회에 만연한 경박한 정신적 지적 풍토에 대한 비판적 반작용의 산물이기도 하고, 청교주의(퓨리터니즘)의 가능성과 한계, 과학 문명 발달의 양면성, 다양한 개혁 운동의 허와 실에 대한 그의 관조적 인식의 결과이기도 하다. 호손의 모호함은 바로 이러한 복합적 관점과 복합적 인식의 표현의 결과로 나타나는데, 그것이 복합적이고 다층적이기 때문에 모호해 보일 수밖에 없지만 그것은 진실을 호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실의 균형잡힌 참모습에 가까운 것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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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재미없는 총평을 하자면 그야말로 무난한 교양서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