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 알랭 로브그리예


악명 높은 첫 문단을 넘기고 나면 의외로 술술 읽히는 책이다. 물론 이는 화자의 서술을 이해하려는 시도를 철저히 배제한 채, 분위기와 문체, 흐름의 변화만을 대략적으로 인지해가며 글자를 눈으로 짚는 수준으로 읽을 때 가능한 말이다. 실제로 로브그리예의 서술을 문자 그대로 이해하겠다면 최소한 작도를 할 수 있는 눈금 없는 자와 콤파스, 환경이 받쳐준다면 3D MAX 같은 빛과 그림자를 입체 공간에서 손쉽게 구현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할 것이다. 반쯤은 진지한 농담이다.

해설을 읽고 나서야 이 실험적인 문체의 의미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는데 “질투”라는 제목, 1인칭이지만 스스로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 관찰자의 시점, 기존의 소설의 내러티브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독특한 서술 기법, 끊임없이 반복하고 변주되며 발전(혹은 왜곡)되는 이야기 등이 불완전하면서도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량이 대단히 길지 않으므로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

A…는 보이에게 지시를 내리기 위해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그녀의 얼굴은 램프의 광선을 오른쪽으로 받고 있다. 강한 조명을 받은 옆얼굴은 빛이 없어져도 망막에 남는다. 칠흑 같은 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물조차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빛의 잔상은 마음대로 이동하며 그 위세가 약해지지 않는다. 이마와 코와 턱과 입술의 윤곽이 도드라진다…….

잔상은 집의 벽 위에, 바닥의 포석 위에, 또한 허공에 있다. 잔상은 정원에서 시냇물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맞은편 산비탈까지 골짜기 곳곳에 있다. 잔상은 또한 사무실, 방, 식당, 응접실, 안뜰, 그리고 큰길 쪽으로 이어지는 도로 위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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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니엘 호손 단편선

초기 작품들을 봤을 때는 미 동부의 자연주의와 신비주의, 인간의 태생적 숙명과 종교적 굴레, 미신과 네이티브 어메리칸 등의 소재가 한데 뒤섞인 풍의 이야기만 주구장창 이어지는 듯했으나 후기의 작품으로 갈수록 사회와 풍자, 기계 문명과 과학 등의 이야기로 번져가는 것을 보며 스펙트럼이 넓은 사람이구나 했는데 뒤에 옮긴이의 평을 읽어보니 이 모든 작품이 사실상 하나의 궤로 묶일 수 있다고 하는 것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 다시, 헌법, 차병직, 윤재왕, 윤지영

그러니까 재미없는 총평을 하자면 그야말로 무난한 교양서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