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레라 시대의 사랑 2, 가르시아 마르케스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 이 소설이 인생의 그것이 되기에 아주 약간 모자라게 된 결정적인 요소를 찾아내고야 말았다. 그것은 독자로 하여금 이 짧지 않은 이야기를 관통하는 주제를 지고지순한 사랑과 소위 낭만 지상주의의 로맨스로만 받아들이게 만드는 작가의 고약한 의도다. 역자가 평에서도 밝혔듯이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콜레라 시대의 사랑》은 물론 제목에서 노골적으로 밝히는 “사랑”이 제재지만 그 외의 이야기들이 - 그냥 생각나는 것들만 나열해보면 형식으로서의 결혼,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오면서 생기는 여러 사회 계층간의 대립과 통합, 이념의 갈등, 사회 제도의 발전과 정비, 전쟁, 노인의 연애, 남녀의 성 역할 등 - 한데 버무려져 있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21세기에도 충분히 생각해볼 만한 그런 여러 소주제들 역시 중심 주제 못지 않게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생각해볼 점도 많았다. 분명히 적지 않은 독자들이 ‘낭만적’이라고 느꼈을 페르미나와 플로렌티노의 감정선, 특히 소설의 최후 장면에서 극도로 고조되는 그 감정선에 대해 개인적으로 공감할 수 없었던 것은 왜일까, 페르미나가 우르비노를 만나기 전 플로렌티노와 나누었던 감정과 결혼 후 우르비노와 나누었던 감정은 어떤 차이가 있었을까, 조금 더 본질적으로 들어가 사랑과 연애와 결혼은 무엇인가, 감정적 교감과 육체적 교감은 하나로 묶어낼 성격의 것인가 아닌가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었다.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내가 지난 세월의 나와는 사뭇 다른 사람이 되었고 전과는 분명히 구별되는 가치관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린 사랑이었다. 아마도 내 사랑은 이제 마냥 어리지만은 아닌 것 같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후베날 우르비노의 구혼은 결코 사랑의 이름으로 제안된 것이 아니라, 그와 같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가 제안했다고 하기엔 이상한 세속적인 재물들로 채워져 있었다. 즉 사회적 경제적 안정과 질서, 행복, 눈앞의 숫자 등 모두 더하면 사랑처럼 보일 수 있는 것들, 그러니까 거의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만 제시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사랑이 아니었고, 이런 의문은 그녀의 혼란을 가중시켰다. 그녀 역시 사랑이 실제로 삶을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이라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여튼 이 긴 이야기를 부담없이 읽어나갈 수 있는 이유는 아래와 같은 위트가 잊을 만하면 등장하기 때문이다. 담담하면서도 그 안에 담겨 있는 넘치는 재치는 밀란 쿤데라의 서술과 닮아 있다는 느낌이 든다.

당시까지 온 힘을 다해 싸웠지만 결국 아무런 영광도 없이 패배해 버린 가장 큰 전투는 탈모와의 싸움이었다. 빗에 머리칼이 엉켜 있는 것을 보기 시작한 순간부터 그는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고통의 지옥을 선고받았음을 깨달았다. 그는 몇 년간 투쟁했다. 그가 발라보지 않은 포마드와 로션은 하나도 없었으며, 무섭게 황폐화되는 머리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견디지 않을 희생도 없고, 믿지 않을 미신도 없었다. 그는 농사용으로 만들어진 ‘브리스톨 연감’의 지시 사항을 모두 외워버렸다. 누군가가 머리카락이 자라는 것은 수확의 주기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평생 이용하던 이발사가 완전히 대머리라는 이유로 그를 버리고, 대신 달이 4분의 1 정도 찼을 때만 머리를 깎는,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방인을 선택했다. 새 이발사가 정말로 비옥한 손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기 시작할 무렵 바로 그가 서인도 제도의 여러 경찰들이 찾고 있던 신참내기 강간범이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이 이발사는 결국 쇠고랑을 찬 채 끌려가고 말았다.

그녀는 무슨 일이든 하다 말고 중간에 멈추고는, 그에게 할 말을 잊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서 손바닥으로 이마를 탁 치곤 했다. 그렇게 시시각각 남편만이 대답해 줄 수 있는 수많은 일상적인 질문들이 머릿속에 떠오르곤 했다. 언젠가 그는 그녀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것은 불구자들이 더 이상 자기 몸에 달려 있지 않은 다리에서 고통과 경련과 가려움을 느낀다는 말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남편이 없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고, 동시에 이제는 그가 없는 곳에서 그를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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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니엘 호손 단편선

초기 작품들을 봤을 때는 미 동부의 자연주의와 신비주의, 인간의 태생적 숙명과 종교적 굴레, 미신과 네이티브 어메리칸 등의 소재가 한데 뒤섞인 풍의 이야기만 주구장창 이어지는 듯했으나 후기의 작품으로 갈수록 사회와 풍자, 기계 문명과 과학 등의 이야기로 번져가는 것을 보며 스펙트럼이 넓은 사람이구나 했는데 뒤에 옮긴이의 평을 읽어보니 이 모든 작품이 사실상 하나의 궤로 묶일 수 있다고 하는 것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 다시, 헌법, 차병직, 윤재왕, 윤지영

그러니까 재미없는 총평을 하자면 그야말로 무난한 교양서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