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슈킨 선집, 알렉산드르 푸슈킨


역시나 푸슈킨의 작품은 실패가 없는데 그럼에도 운율이 있는 글의 번역이란 태생적으로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바, 다 읽는데 시간이 꽤 걸린 편이었다.

훌륭한 문학을 감상한 것 외에 러시아 역사에서 보리스 고두노프라는 인물과 관련된 일화를 알게 된 것은 덤으로 얻은 수확이다. 역사 덕후가 아니더라도 저 키워드를 검색해 나오는 내용 정도는 재미 삼아서라도 충분히 읽어볼 가치가 있다.

그러나 하늘의 황제는 아무 말 없이 옥좌에서 일어나 눈썹으로 명령하여 모든 사람을 물리쳤다. 마치 고대 호머의 신이 많은 아이들을 달랠 때 그랬듯이. 그러나 그리스의 신앙은 영원히 꺼졌으며 제우스는 없고, 우리는 더 현명해졌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은 오로지 사랑과 한가로움 그리고 자발적 유배를 너랑 나누는 것이야!

아래는 «눌린 백작»에 대한 해설에서 발췌.

신화와 달리 여인은 정절과 금욕의 화신도 아니고, 남자는 욕망 때문에 파멸하는 사람도 아니며, 또 정절의 문제 때문에 역사는 전혀 뒤집어지지 않는다. (중략) 역사 자체에 대한 패러디라고 본다면, 경직된 고대 인간 세계의 현실, 인간의 본성에 기반을 두지 않는 부자연스러운 현실에 대해서 유머러스한 태도를, 정통성을 내세우며 사실의 진위에 관계없이 움직이는 역사 진행에 대해서 비판적인 태도를 패러디로써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래는 «안젤로»에 대한 해설에서 발췌.

푸슈킨은 결말의 정의에 관한 부분에 관여하지 않는다. 결말은 정의보다는 자비와 용서에 연관되어 있고 이 용서는 죄의 계량이나 응분의 대가의 성격을 지니기보다 무조건적이다. 법이란 인간사의 복잡성을 판단하는 데 부적합하다고 말하는 듯한 느낌이다. 두 작품은 공히 인간의 외면적인 삶을 규제하고 지탱하는 그릇된 이상이나 원칙이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 또 인간의 본성이란 어떤 경직된 코드로서 포괄될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을 드러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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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니엘 호손 단편선

초기 작품들을 봤을 때는 미 동부의 자연주의와 신비주의, 인간의 태생적 숙명과 종교적 굴레, 미신과 네이티브 어메리칸 등의 소재가 한데 뒤섞인 풍의 이야기만 주구장창 이어지는 듯했으나 후기의 작품으로 갈수록 사회와 풍자, 기계 문명과 과학 등의 이야기로 번져가는 것을 보며 스펙트럼이 넓은 사람이구나 했는데 뒤에 옮긴이의 평을 읽어보니 이 모든 작품이 사실상 하나의 궤로 묶일 수 있다고 하는 것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 다시, 헌법, 차병직, 윤재왕, 윤지영

그러니까 재미없는 총평을 하자면 그야말로 무난한 교양서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