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역, 윌리엄 포크너


책을 처음 잡은 것이 8월 중순이었다. 초반에는 약간 어색한 번역에 막혀 무척 밍기적대면서 조금씩 읽다가 문체에 적응하고 나서부터는 며칠 안에 열독해서 다 읽어낼 수 있었다. 어느 정도 예상한 바지만 문체가 독특한 작가들의 번역은 아무래도 어색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번역 자체의 질에 대해 왈가왈부할 것은 아니라고 본다. 정말 누가 봐도 발번역인 경우가 아니라면 역자가 최선을 다했을 것을 믿으니까.

묘하게 엔딩이 주는 안정감이 감정선을 딱 잡아주어서 그런지, 시종일관 어두운 분위기라든지 아니면 끊임없이 단조감수 함수로 모두가 망해가는 이야기에 어느 정도 익숙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미국 사디즘의 최고의 예”와 같은 수식어에 크게 공감할 수는 없지만 은근히 뒤죽박죽인 서술 방식, 의식의 흐름에 충실한 내면 표현(물론 모든 등장인물에 해당하는 말은 아니다.) 등을 고려하더라도 몰입도가 높고 감정 이입이 잘 되는 것을 보면 잘 쓰인 소설임은 분명하다.

기차가 도착하기 삼십 분 전에 그들이 가늘고 밝고 귀에 거슬리게 웃어대면서 언덕을 어슬렁어슬렁 내려와 승강장으로 모여들었다. 그들의 희고 혈색 좋은 다리는 한결같고, 몸은 젊은이답게 짧은 옷 속에서 공연히 서툴고 요염하게 계속 움직였다.

“그게 아니오. 그게 아니라는 건 당신도 알아. 하지만 당신은 사람이란 어떤 일을 할 때면 단지 그것이 옳기 때문에, 그것을 하는 것이 사물의 조화에 필요하기 때문에 할 수 있다는 걸 모르는 거요?”

그들의 목소리와 움직이는 소리가 문밖으로 불어 나오는 바람에 실려 왔다. 열린 창문으로 공기가 들어와서 사람들의 머리 위를 지나 문간에 서 있는 호러스에게로 되돌아왔다. 공기에는 담배 냄새와 퀴퀴한 땀내와 흙내에 법정 특유의 냄새뿐만 아니라 곰팡내 나는 지친 욕정과 탐욕과 언쟁과 쓰라림의 냄새는 물론이고 더 나은 무엇 대신에 어떤 어색한 안정이 배어 있었다. 창문은 아치 모양의 현관 바로 아래에 있는 발코니를 면하고 있었다. 창문 사이로 부는 산들바람이 처마에 둥지를 튼 참새와 비둘기 들의 짹짹거리는 소리와 구구거리는 소리를 실어 날랐고, 이따금 아래 광장에서 들려오는 자동차의 경적 소리가 계단 아래위의 복도에서 들려오는 공허하면서도 요란한 발소리 사이로 커졌다 작아졌다 했다.

우중충한 해의 우중충한 여름의 우중충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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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니엘 호손 단편선

초기 작품들을 봤을 때는 미 동부의 자연주의와 신비주의, 인간의 태생적 숙명과 종교적 굴레, 미신과 네이티브 어메리칸 등의 소재가 한데 뒤섞인 풍의 이야기만 주구장창 이어지는 듯했으나 후기의 작품으로 갈수록 사회와 풍자, 기계 문명과 과학 등의 이야기로 번져가는 것을 보며 스펙트럼이 넓은 사람이구나 했는데 뒤에 옮긴이의 평을 읽어보니 이 모든 작품이 사실상 하나의 궤로 묶일 수 있다고 하는 것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 다시, 헌법, 차병직, 윤재왕, 윤지영

그러니까 재미없는 총평을 하자면 그야말로 무난한 교양서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