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서, 르 클레지오


책에 대한 전반적인 평을 내 방식대로 간추린 흔적을 내 페이스북 포스트에 내가 직접 단 댓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내가 이 핵노잼인 책 오늘은 꼭 다 읽고 만다.”

어떤 예술 작품에 대해 재미가 없다는 평을 내리는 것은 민주주의 헌법으로 보장된 표현의 자유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남들에게 떠벌리고 다닐 수 있는지는 본인의 염치와 지적 능력이 개입된 약간은 다른 성격의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했으면서 재미가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염치가 없거나 지적 능력이 떨어지거나 또는 둘 다 해당되는 경우다. 나는 염치가 그렇게 없는 편도 아니고 지적 능력이 저만큼 부족하지도 않은 사람이기 때문에 솔직히 털어놓겠다. 어렵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라 페르골라나 <하이파이>, <맘모스>에는 갔을 것 같지 않았다. 왜냐하면 토요일 저녁이면 그곳은 사람이 너무 많으니까 말이다. 그러면 <스타레오>와 <위스키>가 남는다. 소니아는 특별히 더 좋아하는 곳이 없다. 그렇지만 미셸이 만일 속물이라면 그녀는 분명 <스타레오>를 더 좋아했을 것이다. 미셸은 67퍼센트 정도 속물이다.

흐릿한 가짜 조명과 붉은색의 가짜 새틴 천으로 된 가짜 안락의자가 있고, 가짜 제비들이 가짜 부잣집 딸들과 춤을 추고 있는 겉만 번지르르한 그 디스코텍으로 그녀가 소니아 아마두니를 끌고 갔을 가능성이 67퍼센트이다. 다행히도 그럴 가능성을 믿으려 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소설이 어려운 이유는 절대 작가 아저씨의 독수리 타법 때문도 아님을 분명히 밝힌다. 아래는 작가의 말에서 발췌한 것이다.

또한 내가 몇 번 교정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내 글 속에 있을 수 있는 부적절한 표현과 오타에 대해서도 용서를 구한다(나는 내 원고를 손수 타이핑해야 했는데, 양손의 한 손가락씩밖에는 사용할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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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니엘 호손 단편선

초기 작품들을 봤을 때는 미 동부의 자연주의와 신비주의, 인간의 태생적 숙명과 종교적 굴레, 미신과 네이티브 어메리칸 등의 소재가 한데 뒤섞인 풍의 이야기만 주구장창 이어지는 듯했으나 후기의 작품으로 갈수록 사회와 풍자, 기계 문명과 과학 등의 이야기로 번져가는 것을 보며 스펙트럼이 넓은 사람이구나 했는데 뒤에 옮긴이의 평을 읽어보니 이 모든 작품이 사실상 하나의 궤로 묶일 수 있다고 하는 것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 다시, 헌법, 차병직, 윤재왕, 윤지영

그러니까 재미없는 총평을 하자면 그야말로 무난한 교양서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