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R. 5th Issue : dyeing message


현 회사 대표 덕분에 어떻게 알게 된 J라는 형이 있다. 벤처 생활을 하면서 술을 매개 삼아 J와 친하게 되었고 어느 날 그 J를 통해 L이라는 형을 또 알게 되었다. 그 L과 J를 통해 N이라는 분을 알게 되었다. 페이스북에서 페이지 좋아요 좀 눌러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만한 인터넷 매체의 에디터로 일하는 그가 J와 L이 출연하는 팟캐스트에 나와 자신이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를 간략히 했던 적이 있다. 사실 N과의 친분은 어느 술자리에 같이 “있었다” 정도로 미미했지만 왠지 모를 책임감이 들어 알라딘에서 그 프로젝트의 5번째 결과물(웹사이트를 참조하니 정확히는 6번째 결과물이라 할 수 있겠다.)을 주문했다. 표지가 예쁘네라는 생각을 하고 한 번 후루룩 훑은 뒤 언젠가는 읽어봐야겠다 생각하고 침대 머리맡에 놓았다. 하지만 패션에 대한 관심이라고는 일반인들의 그것보다 아주 조금 높은 내게 은근히 손에 닿지 않는 책이었다.

그러던 중 최근 모종의 사건으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책에 손이 가게 되었다. 예상보다 대단히 흥미로웠다. 패션이라는 대주제와 그 중의 염색이라는 소주제, 그 주제들 자체에 그다지 관심이 가지 않는 나 같은 사람이 집중해가며 읽었다는 것은 순전히 이 매거진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이 흥미로운 주제를 선정했다기보다 선정한 주제를 흥미롭게 만들어냈다는 방증이다. 무척 만족스러워서 이월호 중에 재밌어 보이는 것이 있으면 더 구매를 할까 했는데 알라딘에 유일하게 재고가 있는 4호는 보석에 관한 내용이라 일단 포기했다. 태어나서 반짝거리는 돌이라고는 정말 눈길조차 제대로 주지 않은 내 검소한 삶의 방식을 탓해야 하는 걸까.

디어매거진 5호에는 여러가지 재밌는 포인트들이 많았지만(특히 데님에 관심이 많은 내게 허정운 비스포크데님 인터뷰는 참으로 흥미진진했다.) 아래 인용할, 하나의 내용을 담은 두 가지 이야기에 대해 할 말이 조금 있다. 하나는 시화공단에 있는 소규모 염색 샘플 공장인 티에이치 샘플테크 CEO와의 인터뷰에서 발췌한 것이다.

패션 제작 산업에 종사하는 연령대는 계속해서 노령화되고 있다. 염색 산업도 예외는 아닐 것 같은데. 염색은 육체적으로 굉장히 힘든 일이다. 더운 여름에도 뜨거운 스팀 앞에서 작업해야 하기 때문에 체력 소모가 크다. 이러한 염색 실무에 투입되는 젊은이들은 거의 없다. 나잇대가 40대 정도에 멈췄다고 봐야 한다. 우리 회사도 20-30대 직원은 전체의 10분의 1 정도다.

아래는 홍콩 외곽의 염색 공장을 20년 이상 경영해온 사장의 인터뷰 중 한 꼭지다.

젊은 사람들이 일하고 싶다고 한 적은 없었나? 우리와 일하며 배우고 싶다고 찾아온 패션 디자인 학생이 있었다. 그런데 내가 돌아가라고 했다. 미래가 없다는 걸 아니까. 정말 고되고 힘든 일이다. 봐서 알겠지만 우리는 에어컨도 없다. 그 학생의 젊음을 낭비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우리 공장 뿐 아니라, 산업 전체가 죽어가고 있기 때문에, 우리 같은 종사자들이 나이를 먹고 젊은이들은 찾아오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후략)

후자의 경우는 홍콩의 염색 산업이 사장되고 있다는 큰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야기라 약간 맥락이 다르긴 하지만 이와 비슷한 패션 제조 산업 종사자의 노령화는 저 위에서 언급한 J 또한 말해준 적이 있다. 여러 (오)덕성을 두루 갖췄지만 특히 신발, 구두에 조예가 깊은 그는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신발을 만들 수 있는 기술자들의 나이대가 이제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을 넘어가는 지경에 이르렀다며 젊은 사람들이 일정 정도의 경지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먹고사니즘을 책임져주지 못하는 현 시스템에 대해 일갈을 한 적이 있었다. 국내의 기술을 넘겨줄 후진을 양성하지 못하고 산업 전체가 해외 어딘가의 값싼 노동력으로 이전된다면 질적 저하의 피해를 그대로 돌려받을 것은 일반 소비자라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지엽적인 패션에 대해서도 문외한이고 그것을 감싸고 있는 산업 구조에 대해서도 전혀 아는 바가 없던 내가 이 업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계기가 된 이야기였다. 나도 나중에 돈 많이 벌면 좋은 거 좋은 가격에, 그런 좋은 것을 만드는 사람도 좋은 대우를 받게 하는 소비를 하고 싶을 것이 아닌가.

아, 참고로 디어매거진은 “출판사 디어에서 2011년부터 발행해 온 비정기 간행물입니다. 한국 안팎의 패션 제작산업을 재조명함과 동시에, 사라져가는 가치들을 아카이빙하고 대중에게 알리고 있습니다. 또한, 프로젝트 매거진 발간, 워크샵과 이벤트 진행 등을 통해 보다 넓은 의미에서 패션을 담는 컨텐츠를 만들어 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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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니엘 호손 단편선

초기 작품들을 봤을 때는 미 동부의 자연주의와 신비주의, 인간의 태생적 숙명과 종교적 굴레, 미신과 네이티브 어메리칸 등의 소재가 한데 뒤섞인 풍의 이야기만 주구장창 이어지는 듯했으나 후기의 작품으로 갈수록 사회와 풍자, 기계 문명과 과학 등의 이야기로 번져가는 것을 보며 스펙트럼이 넓은 사람이구나 했는데 뒤에 옮긴이의 평을 읽어보니 이 모든 작품이 사실상 하나의 궤로 묶일 수 있다고 하는 것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 다시, 헌법, 차병직, 윤재왕, 윤지영

그러니까 재미없는 총평을 하자면 그야말로 무난한 교양서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