뻬쩨르부르그 이야기, 고골


가히 푸시킨에 버금 가는 작가라는 명성이 어울리는 작가다.

귀부인들의 요구는 대부분 마음이나 성격을 초상화에 묘사해 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때에 따라서 전혀 실물에 따르지 말고 모가 난 것은 둥그렇게 하고 결점은 모두 가리거나 깨끗이 지워다라고 하기도 했다. 요컨대 홀딱 반할 정도까지는 못 되더라도 넋을 잃고 볼 정도의 얼굴로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귀부인들은 앉아서 그려지고 있는 동안에도 이따금 화가를 깜짝 놀라게 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예를 들면 우울증에 빠진 표정을 지으려는 귀부인도 있었고, 낭만적인 표정을 지으려는 귀부인도 있었고, 또 어떤 귀부인은 어떻게 해서라도 입을 작게 보이려고 힘껏 오므림으로써 머리핀보다도 더 작고 귀엽게 오므린 입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실물처럼 꾸밈새가 없는 자연스러움이 나타나도록 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창조의 지고한 비밀을 깨닫도록 노력해라. 그 비밀을 깨닫도록 선택된 자는 행복하다. 그런 사람은 자연 속에 저속한 대상이 없는 법이다. 창조자인 화가는 보잘것없는 것을 그릴지라도 위대한 것을 그렸을 때와 마찬가지로 위대하다. 아무리 그가 비천한 것을 그려도 이미 거기에는 비천한 것이 없다. 왜냐하면 창조자의 아름다운 마음이 은연중에 그것을 통하여 스며나오기 때문이다.

웃음은 고골 문학의 창조적 힘이며 비밀이다. (중략) 그의 소설은 웃음을 떠나 말할 수 없고, 모든 것은 희극적 전망으로 재구성된다. 고골의 웃음은 그것이 유발되는 희극적 상황에서만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비극적 상황으로 인식될 수 있는 자리에서도 웃음은 여전히 유지되며 더 빛을 발한다. 그의 작품에선 언제나 불안과 고뇌의 그림자가 점점 짙게 드리워지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비관적 전망에도 고골은 웃음을 잃지 않고 있다. 웃음은 영혼 그 자체, 그의 영혼의 소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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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니엘 호손 단편선

초기 작품들을 봤을 때는 미 동부의 자연주의와 신비주의, 인간의 태생적 숙명과 종교적 굴레, 미신과 네이티브 어메리칸 등의 소재가 한데 뒤섞인 풍의 이야기만 주구장창 이어지는 듯했으나 후기의 작품으로 갈수록 사회와 풍자, 기계 문명과 과학 등의 이야기로 번져가는 것을 보며 스펙트럼이 넓은 사람이구나 했는데 뒤에 옮긴이의 평을 읽어보니 이 모든 작품이 사실상 하나의 궤로 묶일 수 있다고 하는 것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 다시, 헌법, 차병직, 윤재왕, 윤지영

그러니까 재미없는 총평을 하자면 그야말로 무난한 교양서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