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겔 스트리트, V. S. 나이폴


나는 어머니의 생각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자신도 잘 모르는 사이에 약간 난폭해지고 있었다. 나는 술을 고래처럼 마시고 있었고 그 밖에도 많은 짓거리를 하고 있었다. 세관에서는 조그마한 구실만 있으면 술을 압수할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세관에 근무하면서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술 냄새만 맡아도 비위가 뒤틀렸다. 그렇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자신에게 말하곤 했다. “너는 이것을 극복해야 돼. 술을 약처럼 마셔라. 코를 꽉 잡고 눈은 감아라.” 이윽고 나는 일류 술꾼이 되었고 어느새 술꾼으로서의 자존심 때문에 고통을 당하기 시작했다.

나는 비교적 후반부에 등장하는 이 문단을 읽고 이 나이폴이라는 작자가 한때는(또는 그 뒤로 당분간, 또는 그 뒤로 평생) 대단한 술꾼이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이것은 1번 술을 좋아하고, 2번 그러면서도 술을 많이 먹는 사람들이라면 대번에 알아차릴 수 있는, 일종의 그들만의 공감대다. 이렇게 한때는(또는 그 뒤로 당분간, 또는 그 뒤로 평생) 대단한 술꾼이었던 사람이 본인의 어린 시절에 대해 “자전적 픽션”을 썼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 그렇다. 그것은 2001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나이폴의 «미겔 스트리트»가 모두가 망해가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전후의 트리니다드라는, 그야말로 막장 식민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시공간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읽히는 이유는 당시 식민지 거주민들이 느끼던 패배 의식의 기저가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네가 종종 경험하는 막막함의 그것과 닿아 있기 때문이다. 조금 비약을 보태자면, 냉전 이후의 의미로서의 제1세계를 제외한 (다수의) 나머지 사람들이 범지구적으로 공유하는 감정의 근간 중 하나가 탈식민주의의 발로가 아닐까. 현실은 그보다 좀 더 우울한 해석인, 식민주의의 그림자는 여전하다 정도에 가깝겠지만.

위에서 이런 저런 말들로 언질을 주었지만 «미겔 스트리트»는 전반적으로 음울한 분위기지만 그 절박한 환경에 처한 사람들의 안쓰러운 수준이 해학적으로 느껴질 만큼 심각한 정도에 이르렀기 때문에 오히려 큰 부담감 없이 쉬이 읽어나갈 수 있는 작품이다. 각각의 일화들은 대단히 모듈러하게 설계된 이야기와 같아 독립적으로 읽어도 좋고 하나의 맥락에서 읽어나가도 좋다. 단편들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나이폴의 자전적 주인공의 이야기에서, 이 작품에서 나온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의 이야기가 집대성되는 느낌을 제대로 받으려면 단숨에 읽어버리는 편을 추천한다.

나이폴의 섬세하고 날카로운 묘사를 차치하고 대단히 공을 들인 티가 나는 번역이 맘에 들었다. 국제적으로 다소 독특한 언어를 사용하는 이 나라에는 좋은 번역가와 그들의 노오력이 깃든 작품들이 더 많이 필요하다.

“내게 매질만 하지 않는다면 좋아하고말고요.”

그는 바지 뒷주머니에서 인쇄된 종이 한 장을 끄집어내더니 말했다. “이 종이에는 어머니들을 노래한 가장 위대한 시가 인쇄되어 있단다. 싸구려 값으로 네게 팔도록 하지. 4센트만 내려무나.”

나는 집 안으로 들어가서 말했다. “엄마, 시 한 편을 4센트에 사시겠어요?”

어머니가 말했다. “그 미친 사람에게 우리 집 마당에서 썩 나가지 못하겠느냐고 해라, 알겠니?”

나는 B. 워즈워스에게 말했다. “어머니가 그러시는데 4센트가 없대요.”

B. 워즈워스가 말했다. “그게 바로 시인의 비극이야.”

그러고 나서 그는 그 종이를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는 조금도 개의치 않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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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니엘 호손 단편선

초기 작품들을 봤을 때는 미 동부의 자연주의와 신비주의, 인간의 태생적 숙명과 종교적 굴레, 미신과 네이티브 어메리칸 등의 소재가 한데 뒤섞인 풍의 이야기만 주구장창 이어지는 듯했으나 후기의 작품으로 갈수록 사회와 풍자, 기계 문명과 과학 등의 이야기로 번져가는 것을 보며 스펙트럼이 넓은 사람이구나 했는데 뒤에 옮긴이의 평을 읽어보니 이 모든 작품이 사실상 하나의 궤로 묶일 수 있다고 하는 것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 다시, 헌법, 차병직, 윤재왕, 윤지영

그러니까 재미없는 총평을 하자면 그야말로 무난한 교양서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