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킨 이야기, 알렉산드르 푸시킨


푸슈킨의 책은 처음 읽어본다. 사실 뭐 이름만 들어봤지 대표작도 모르고(무식) 이 책도 이걸 한 번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해서라기보다 어느 온라인 서점에서 남는 포인트로 그나마 고전에 가까운 민음사 중고 서적을 고르다 얻어 걸린 것이다. 그렇게 나와 푸슈킨의 운명적인 만남은 우연하게 시작되었다. 결론(?)부터 짚어보면 나는 이 사람의 이야기를 무조건 더 읽어볼 계획이다. 길지 않은 분량의 단편 안에 러시아 고유의 민족적인 정서, 거대한 대륙의 자연 환경, 본인 특유의 위트와 내러티브를 담아내는 것은 시대의 대작가가 아니고서는 이루어내기가 힘든 일인데 이 사람은 그 위대한 일을 역자의 말마따나 “단어를 몹시 아끼면서”, 아주 절제된 문장 속에서 간결하고 재치 있게 표현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모두의 귀감이 될 만한 작가이면서 역시는 역시 역시라는 만고의 진리를 상기하게 되는 대목.

«스페이드 여왕»도 재밌는 단편이지만 대중적으로 권하기에는 “역시” «벨킨 이야기»의 잽싸게 치고 빠지는 단편들이 제격이다. 단 한 편도 빠짐없이 문장이 유려하면서도 시종일관 적정한 긴장감을 유지한다. 비극도 희극도, 몽환적인 픽션도 그렇지 않은 이야기도 그 어떤 이야기를 써내려가든 훌륭하다. 이런 극찬이 다소 지나칠 수 있겠지만 훌륭한 번역이 곁들여졌기에 나의 이 칭찬들은 높은 확률로 유효하다. 내가 지금 꼬냑 몇 잔을 먹고 취해서 하는 소리가 아니다.

«스페이드 여왕»의 한 구절로 졸필을 마감한다.

물론 백작 부인이 악독한 마음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사교계에서 항상 떠받들어져 버릇이 나빠진 여자가 으레 그렇듯이 변덕이 심하고 인색했으며, 자신의 시대에 사랑할 것은 이미 다 사랑했고 현재를 낯설어 하는 모든 나이 든 사람들이 그렇듯이 차가운 이기주의에 빠져 있었다.

“자신의 시대에 사랑할 것은 이미 다 사랑했”다는 저 구문은 (내가 접해본) 화려한 과거를 보낸 노인을 묘사한 말 중 가장 우아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표현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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