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결 블로그 ✍️ 💻 📷 🍻

구덩이, 안드레이 플라토노프

민음사판 세계문학전집으로 153번째에 출간된 안드레이 플라토노프의 구덩이를 읽는 것이라면 모름지기 미리 알아둬야 할 것이 바로 책 마지막 부분에 들어간 바로 이 역자의 말이다. 솔직히 말해서 이런 이야기는 역자의 말이 형식상 본문 이후에 나와야 한다는 철칙을 굳이 깨고서라도 내용에 대한 독자의 이해와 독서의 만족도를 위해 책 앞에 별도로 넣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 사족이지만 노어노문학을 전공한 친구 J의 말에 따르면 역자인 정보라 선생님의 번역은 믿고 읽을 만한 것이라고.

더욱이 플라토노프는 소설가이기 이전에 시인이었다. 소설에 운율을 갖춘 시적인 표현들이 종종 등장하며, 이것은 언어 자체의 의미와는 별개로 특정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그러나 의미가 어그러지는 것을 막기 위해 충분히 옮길 수 없었던 점이 아쉽다. 전반적으로, 매끄러운 한국어에 중점을 두고 의역을 한다면 원문 고유의 낯설고 독특한 분위기를 해칠 우려가 있었고, 원작 자체의 분위기를 고려하여 직역을 고집한다면 미숙한 번역으로 인한 껄끄러운 우리말로 보일 위험이 있었다. 두 가지 선택의 여지를 놓고 고심 끝에 후자를 택했음을 밝히는 바이다.

스탈린 정권하의 소련의, 이른바 '집단화’와 '산업화’의 모습을 디스토피아적으로 그려낸 소설로 독특한 성격의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어둡고 음침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독특한 서술 방식이 돋보이나 위에 언급한 것처럼 번역된 텍스트로 읽기에는 아무래도 원전의 느낌을 온전히 받기엔 어렵다.

“됐어요.” 치클린이 말했다. “여러 가지 죽은 사물이 그녀를 지켜 주게 내버려 두세요. 죽은 것도 결국 살아 있는 생물만큼 많으니 그들끼리 있으면 외롭지 않을 거예요.”

먼 곳으로 부농들을 근절시켜 버린 뒤에도 자체프는 마음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사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는 기분이 더 나빠졌다. 눈 덮인 강의 섬세한 흐름 위로 뗏목이 질서 정연하게 떠내려가는 것과, 추운 풀밭을 지나 먼 심연으로 흘러가는 어둡고 죽은 물에 저녁 바람이 주름을 잡는 것을 그는 오랫동안 관찰했고, 그의 마음은 슬프고 쓸쓸해졌다. 사회주의는 슬픈 불구자 계급이 필요치 않았으므로, 그도 또한, 곧 먼 침묵 속으로 근절될 것이었다.